아스완댐 건설로 인한 수몰 위기에서 구해낸 유적은 람세스2세의 신전뿐만이 아니다. 필레 섬에 지어졌던 이시스 신전도 국제사회의 지원 속에 새로운 보금자리로 옮겨질 수 있었다.
필레 신전은 고대 이집트 유적지로는 비교적 최근인 서력기원전 4세기에 지어졌으며 서력 4세기경까지도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로마 황제인 테오도시우스 1세 치하에서는 폐쇄되었으나 이후에는 이집트의 기독교 분파인 콥트교의 교회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집트에서 자생적으로 발전한 곱트교는 451년 칼케돈공의회에서 총대주교 디오스코로스가 이단으로 단죄된 데 반발해 로마교구에서 독립했으며, 현재 이집트 인구의 1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1898∼1912년에 영국에 의해 아스완댐이 건설되면서 우기가 되면 필레 신전의 기둥 아래까지 물이 차오르곤 했다. 새롭게 건설되는 아스완 하이댐에 의해 수몰될 위기였지만 유네스코 지원으로 서북쪽으로 약 20m에 위치한 아질키아 섬으로 해체하여 옮겨졌다. 하지만 여전히 옛이름 그대로 필레 신전이라 불린다. 유네스코 지원으로 아질키아 섬의 화강암을 폭파하고 제거하여 필레 섬과 동일한 지형을 조성한 후 유적 전체를 분해해 옮긴 후 재조립했다. 단순한 신전의 이동이 아니라 흡사 섬 전체를 이동한 것 같다. 필레 신전의 주인인 이시스 신은 저승신 오시리스의 누이이자 부인이었다. 남편을 지극히 섬긴 것으로 유명하며 로마시대에는 이집트 최고의 신으로 숭배되었다고 한다.
필레 유적지를 방문하기 위해 아스완댐 동남쪽에 있는 선착장으로 향한다. 아스완댐 주변에 이르자 가이드는 거리 사진을 담고 있는 내게 사진을 찍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때마침 경찰이 우리 차량을 잠시 세워 살핀다. 긴장한 내게 가이드는 별일 아니라며 보안 관계상 아스완댐 주위에서는 사진 촬영이 제한된다고 설명한다. 이집트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댐인 만큼 관리와 보안도 엄격한 듯했다.
보안 절차를 마치고 도착한 선착장에는 다행히 관광객이 많지 않았다. 아침 일찍 서둘러서이기도 하지만 단체 관광객들과 동선이 비켜선 덕이다. 외국인에게는 대뜸 엄청난 가격을 부르기 때문에 배값 흥정을 해야 한다고 크루즈 선상에서 안내를 받았지만 다행스럽게도 현지 가이드가 있어 작은 실랑이만으로 보트에 오를 수 있었다. 큰 바가지를 면한 듯하다. 보트는 물보라를 일으키며 이질키아 섬으로 향한다. 조금 전 투덜대던 선장의 모습은 하얀 옷에 비친 햇살 탓인지 평안하게 느껴진다. 바람을 맞서며 보트는 섬에 가까이 다가가고 강물에 떠 있는 유적지가 눈에 가득 차오른다.
신전을 이전하기 전에는 물이 차오른 신전 기둥 사이로 배가 오갔다고 하지만 지금은 나무로 만들어진 선착장에 정박한다. 선착장에서 오르면 제30왕조의 파라오 넥타넨보 1세의 정자가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몇 걸음 지나면 멋진 장식의 다양한 기둥들을 만날 수 있다. 이집트 건축의 다양한 장식 기둥들 사이로 멀리 나일강이 흐른다. 햇살에 반짝이는 물결이 기둥을 따라 아름다움을 더한다. 기둥들에는 파라오 이름을 기록하는 타원 안에 로마 황제들 이름이 새겨져 있다. 지나온 역사의 흔적이다. 기둥을 지나면 첫 번째 탑문에 이르고 그 주위 벽면을 따라 아름다운 부조들을 만날 수 있다.
탑문 앞 2개의 오벨리스크를 지나 다주식 회랑에 들어선다. 나폴레옹 군대의 병사들과 1923년에 방문한 관광객들이 남겨놓았다는 낙서로 얼룩진 벽과 기둥들이 보인다. 다주식 회랑의 아름다운 기둥장식이 시선을 이끌지만 벽에 묘사된 신들의 모습과 콥트 교도들에 의해 파괴된 부조들이 신전의 흥망과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하다. 걸음을 옮겨 두 번째 탑문을 지나 성소에 다다른다. 이시스 여신의 성소는 12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신이 들려주는 수많은 이야기가 벽면에 부조로 아로새겨져 있다. 가이드의 설명을 더하니 넘치는 이야기가 겹겹이 쌓여 신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하다.
이시스 신전을 뒤로하고 하토르 신전을 따라 걸음을 옮기니 필레 유적지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라는 트라얀 정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종려나무와 파피루스 문양이 아름답게 장식된 14개 기둥이 시선을 붙든다. 필레 유적지는 넓지는 않지만 수많은 이야기와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서력기원전부터 오늘날까지 벽면 부조를 따라 역사의 페이지를 빠르게 넘겨본 기분이다.
필레 유적지를 둘러본 후 아스완 하이댐으로 향한다. 아스완댐은 아스완시에서 남쪽 약 8Km 위치하며 영국이 화강암으로 건설한 옛 댐이다. 길이 2400m, 높이 45m로 건설 당시는 세계에서 가장 큰 댐이었다. 농업관개용으로 지어진 댐은 시간이 지날수록 전력 생산 등에서 한계를 보였고 결국 지금은 하이댐이라 불리는 아스완 하이댐을 건설하게 되었다. 소련의 협조로 1960년에 시작하여 1971년 완공된 다목적댐으로 부족한 농경지와 전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이댐은 입장료를 내고 경찰들이 지키고 있는 초소까지 방문할 수 있다. 댐 주위에서는 보안상 사진촬영을 금하더니 댐에서는 사진촬영을 허락한다. 댐 주위 풍경을 담으며 전시한 안내판을 읽는다. 1956년 나세르 대통령의 수에즈 운하 국유화 선언으로 수에즈 위기라는 사건이 터지고 서유럽 국가들 대신 소련의 자금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인공호수와 댐이 건설되었다. 길이 3.6㎞, 높이 110m의 거대한 댐은 고대의 유적 못지않게 보는 이를 압도한다. 하이댐으로 인하여 인근 생태계에 영향력을 끼치고 증발하는 수증기로 카이로 날씨까지 영향을 미쳐 비가 자주 내리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델타 지역에 비옥한 토사를 실어주던 물길이 막혀 인공 비료 사용이 늘고 수량이 줄어 나일 강 하류는 염도도 높아진다고 한다. 많은 유적지가 이전되고 누비아인들도 생활 터전을 바꿨다. 그나마 많은 유적들이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옛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일부 유물들은 이집트 정부의 선물로 세계 여러 나라에 보내졌다.
잃은 것과 얻은 것을 외지인이 가늠하기는 어려웠지만 아스완댐과 유적을 둘러보며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이집트인들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여전히 나일강은 조용히 흐르고 햇살은 뜨겁게 쏟아진다.
박윤정 여행가·민트투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