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하다. 왜 그 꽃이 처연하게만 보이는지. 예전처럼 그렇게 반갑고, 한 계절, 환희의 축포로 보이지 않는지. 붉고 환한 꽃. 가지마다 그 꽃들로 붉다. 평소에는 그 붉음이 수줍음으로 보였고, 미래에 대한 기약으로 보였다. 올해는 아니다. 꽃은 그 꽃인데, 여느 해와 같은데, 왜 올해는 그리 달리 보일까. 내 마음의 풍경이 우울하고 심란한 까닭이다. 정말, 꽃이 피었다. 백일홍, 일명 자미화로 부르는 그 꽃들로 길가가 붉다. 그렇게 꽃들은 한결같게 피고 지는데, 사람 마음은 왜 그렇듯 변덕스러울까.
백일 동안 피어 있다 해서 백일홍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그 나무의 정식 이름은 배롱나무이다. 수피가 반들반들해 더 고아하게 보이는 배롱나무는 만지면 간지럼을 탄다 해서 ‘간지럼 나무’로도 불린다. 따듯한 곳을 좋아하는 나무의 특성상 남도 지방에서 더 많이 만날 수 있다. 사생결단의 중앙정치에 염을 느껴 낙향한 선비들이 사랑했던 꽃이 그 꽃이다. 자연 속에 파묻혀 안빈낙도하던 선비들은 그 꽃을 벗 삼아 인생을 노래하곤 했다. 그래서 그 꽃을 선비의 꽃이라고도 부른다. 선비들이 사랑했던 꽃답게 그 꽃은 우리에게 희망을 상징한다. 꽃이 다 지면 햅쌀이 난다 해서 그 꽃을 보며 배고픔을 참던 위로의 꽃이기도 하다. 그 꽃은 어느 양지바른 산비탈의 무덤가에서도 볼 수 있다. 가지가 휘늘어지게 꽃을 매단 그 넉넉함 만큼이나 사람들은 자손 발복과 가문 융성을 기원하며 조상의 산소에 그 나무를 심곤 했다. 옥황상제의 정원을 자미원이라고 부르는데, 자미화가 피어 있는 무덤의 주인은 옥황상제의 복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