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통계청은 8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발표했다.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0.038% 하락한 104.81로 8개월 연속 1% 미만의 상승률을 보였다. 통계청은 소비자물가가 하락한 원인을 국제유가 하락, 정부의 물가안정 정책, 농산물 가격 하락에서 찾고 있다. 개인서비스, 공업제품 등의 가격 상승 요인에도 불구하고 농축수산물, 공공서비스, 집세 등의 가격 하락 요인에 의해 지수가 하락했다는 분석이다. 정부의 분석 결과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는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는 ‘D 공포’가 몰려오고 있다.
정부도 장기간 저물가 현상이 지속되는 디스인플레이션에는 공감하면서도 디플레이션은 부정하고 있다. 이번 물가 하락을 공급 측 요인에 의한 것으로 분석하면서 수요 측 요인인 경기 부진을 부인하고 있다. 잘못된 진단이다.
우리나라 국내 물가를 총체적으로 가장 잘 대변하는 지수는 ‘GDP디플레이터’(명목성장률과 실질성장률의 차이로 경제 전반의 물가상승률 의미)이다. GDP디플레이터의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은 2018년 4분기 -0.1%, 2019년 1분기 -0.5%, 2분기 -0.7%로 지속적으로 하락폭이 커지고 있다.
물가 하락 요인을 진단하기 위해 국내총생산(GDP) 동향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경제성장률은 2019년 상반기 전년 동기 대비 1.9%로 계속 하락하고 있다. 건설업 성장률은 2018년부터 2019년 상반기까지 마이너스 값을 보였다.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면서 동시에 GDP디플레이터가 연속 하락했다. 공급과 수요를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수요가 위축됐기 때문이다.
수요의 위축 현상은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9년 8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서 소비자심리지수는 92.5로 지난 1분기에 잠시 반등하다가 하락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경제심리지수 순환변동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민간투자도 위축되고 있고, 소비 증가율도 둔화됐다. 소비 증가도 민간보다 정부가 억지로 끌고 가는 형국이다. 결국 민간투자와 민간소비의 위축이 경기를 악화시키고 물가 수준을 하락시킨다고 판단할 수 있다.
물가가 하락하면 무슨 문제가 생기는가. 현재 상황에서 가장 큰 문제는 가계부채다. 2019년 2분기 말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1467조1000억원으로 사상 최대 수준이다. 그동안 계속 늘어난 가계대출 잔액은 경제 침체의 위험을 증가시켰다. 이자율이 급상승하면 부실채권이 증가하고 신용이 위축돼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준다. 물가 하락은 채무의 실질적인 부담을 가중시킴으로써 채무불이행의 위험을 증가시킨다. 이에 따라 경제가 침체하면 물가가 하락하고, 다시 경제가 나빠지는 악순환 고리가 형성된다. D공포가 기우만은 아니다. 선제로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
먼저, 정부는 2020년 예산안을 대폭 수정해서 큰 폭의 국가채무를 증가시키는 재정적자 정책을 폐기해야 한다. 가계부채가 매우 높은 수준이고, 재정 전달 체제가 비효율적인 상황에서 대규모 재정적자 정책은 국가채무만 증가시키고 경제를 악화시킨다. 국가채무가 증가하면 이자율이 상승하고, 민간 소비와 투자가 위축되고, 신용이 감소하기 때문에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다. 물가는 하락하면서 D공포는 현실이 된다.
이어, 통화당국은 중기 물가안정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금융완화 정책을 장기간 실시해야 한다. 금융정책의 효과를 보기 위해 자산시장의 규제도 완화해야 한다. 민간이 충분하게 예측할 수 있도록 예견된 장기 금융완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끝으로,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전력요금 인상 요인, 주52시간 근무제 실시에 따른 버스요금 인상 요인 등을 검토해 공공요금에 합리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문제가 누적된 이후 한꺼번에 해결하려면 문제는 더 커진다.
우리나라는 장기불황의 길목에 서 있다. 인구구조 변화와 함께 세수의 감소 및 수요 감소가 만성화된다. 재정지출은 줄이고, 생산성은 높여야 한다. 국민이 D공포를 갖지 않도록 정책당국의 선제적이고 합리적인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