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전연패’ 위기의 존슨… ‘10월 노딜’ 가능성 희박해져

英 하원 ‘브렉시트 3개월 연기 법안’ 가결 / 찬성 327표·반대 299표로 통과 / 6일 상원 처리·여왕 재가 땐 효력 / ‘공’은 바로 EU로… 수용여부 결정 / 조기 총선 동의안도 부결돼 발목 / 與 반란군 대거 등장 지도력 실추 / 동생 존슨 부장관도 등돌려 상처

유럽연합(EU)과 아무런 합의를 못 하더라도 10월31일 시한 내 EU를 떠나겠다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노 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불사론이 의회 벽에 가로막혔다. 노 딜 방지법이 하원을 통과한 데 이어 상원의 시간 끌기라는 막판 변수까지 사라지면서다. 존슨 총리는 지난 7월 말 취임 후 처음 가진 이틀간의 ‘의회 혈투’에서 연전연패하며 임기 시작 6주 만에 리더십에 치명상을 입었다.

 

영국 하원은 4일(현지시간) 노 딜 브렉시트를 막기 위해 노동당 힐러리 벤 의원이 제출한 이른바 ‘유럽연합(탈퇴) 법안’을 찬성 327표, 반대 299표로 가결했다. 이 법안이 상원을 통과해 여왕 재가를 받으면 존슨 총리는 10월31일로 예정된 브렉시트 시한을 내년 1월31일까지 3개월간 연장해 달라고 EU측에 요청해야 한다.

테리사 메이 전 영국 총리(왼쪽 두번째)가 4일(현지시간) 런던 하원에서 ‘유럽연합(탈퇴) 법안’ 표결 전에 열린 ‘총리 질의응답’(Prime Minister’s Questions)에 참석해 웃고 있다. 하원 최장수 현역 의원이자 전날 당론을 어기고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다는 이유로 출당 조치된 켄 클라크 의원(왼쪽 첫번째)도 메이 전 총리 옆자리에 앉아 있다. 런던=AFP연합뉴스

영국이 10월31일까지 EU를 떠나려면 존슨 총리는 10월19일 전에 EU와의 새 합의안을 마련해 하원 승인을 받거나 노 딜에 대한 하원 동의를 얻어야 한다. 노 딜 방지법에 찬성한 의원들은 이제 전임 테리사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안을 조금 손보거나 제2 국민투표를 거치는 방식으로 브렉시트 교착상태를 풀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영국 더 타임은 전했다. 존슨 총리가 ‘죽기 살기로’(do or die) 10월31일 브렉시트를 이행하겠다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려면 한 발 물러설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다.

 

존슨 총리는 이에 반발해 하원을 해산하고 10월15일 조기총선을 실시하는 내용의 동의안을 표결에 부쳤으나 찬성 298표, 반대 56표로 부결됐다. ‘고정임기 의회법’에 따르면 조기총선 실시에는 하원 전체 의석(650석)의 3분의 2 이상인 434명의 찬성이 필요한데, 제1야당 노동당의 기권으로 발목이 잡혔다. 존슨 총리는 조기총선에 반대하는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를 ‘겁쟁이’라고 몰아붙였으나 코빈 대표는 “총리 제안은 사악한 왕비가 백설공주에게 건넨 (노 딜이라는) 독이 든 사과”라며 거부했다. 총리로서는 전날 의사일정 주도권을 하원에 넘겨준 데 이어 뼈아픈 3연패를 당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여당 내 반란군이 대거 등장하면서 총리이자 당대표로서의 권위도 실추됐다.

설상가상 존슨 총리의 동생인 조 존슨 기업부 부장관마저 이날 트위터를 통해 “가족에 대한 충심과 국익 사이에서 해결할 수 없는 갈등을 안았다”며 사퇴 의사를 밝히고 등을 돌렸다. 평의원 모임인 ‘1922위원회’ 등 보수당 내 주요 의원단체는 반란군 21명의 당적을 박탈한 존슨 총리에 반발하며 출당 철회를 요구했다.

 

영국 상원은 5일 오전 1시30분쯤까지 심야토론을 벌인 뒤 노 딜 방지법안을 6일 오후 5시까지 처리해 하원으로 송부하는 의사일정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상원 내 브렉시트 지지파가 무더기 수정안 제출과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등 시간 지연전술에 임할 것이라던 당초 예상은 깨지면서 존슨 총리는 벼랑 끝에 내몰리게 됐다. 상원 계획대로라면 하원은 오는 9일 상원이 처리한 수정안을 놓고 최종 표결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여왕 재가까지 완료되면 다음 주(9∼12일) 시작되는 ‘의회 정회’ 전에 입법은 마무리된다. 그러면 공은 EU로 넘어가 시한 연장에 동의할지를 결정하게 된다.

 

이에 따라 ‘10월31일 노 딜 브렉시트’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하지만 조기총선 실시 여부는 아직 ‘깜깜이’다. 정부는 오는 9일 조기총선 동의안을 다시 상정하는 등 계속해서 밀어붙일 태세다. 노동당은 노 딜 방지법이 발효된 후라면 조기총선 자체에 반대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