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인생, 떠오르는 로맨스…황혼의 동거 [김기자와 만납시다]

“아무래도 황혼의 활력소가 되지 않겠어요? 일상이 무료하지도 않을 거고, 좋게 봅니다.”

 

지난 10일, 인천의 한 노인영화관에서 만난 직원 조모씨는 어느 황혼 커플 사연을 소개하며 이같이 말했다. 70대 커플이었다 밝힌 조씨는 “결혼을 하지 않아 부부는 아니다”라고 강조한 뒤, 2년여째 핑크빛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커플을 추가로 언급한 그는 “양쪽 자녀가 어머니(아버지)의 이성친구가 있다는 걸 안다”고 귀띔했다.

 

이날 서울 동대문구의 한 콜라텍에서 만난 70대 커플도 “(사별이나 이혼 후) 짝 찾는 이들을 여기서 볼 수 있다”며 “서로 마음이 맞고 생각이 같으면 새 출발도 나쁘지 않다”고 ‘황혼 로맨스’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서울 중구청 주최로 명동의 한 웨딩홀에서 열린 ‘어르신 사랑 효도미팅’에서 할머니(왼쪽)와 할아버지가 대화하고 있다. 사진은 2014년 11월13일 촬영. 연합뉴스

◆양지로 나온 ‘노인의 성’…황혼 재혼 그리고 동거

 

새 짝 찾는 노인이 새롭지 않은 시대다. 금기로 여겨졌던 ‘노인의 성(性)’이 양지로 나오고, 그들에게도 로맨스가 있다는 인식이 조금씩 확산하면서다. 통계청의 ‘2018 고령자통계’에 따르면 2000년 전체 재혼 총 9만1502건 중 약 1.3%(총 1173건)던 ‘65세 이상 재혼’ 비율이 2017년에는 약 4.4%(전체 8만9086건·65세 이상 3886건)로 건수와 동반상승한 점이 이를 방증한다.

 

다소 부담스러운 재혼 대신에 황혼 동거를 택한 이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 17.9년이었던 65세 기대여명(65세 시점에서 기대되는 평균 향후 생존연수)의 연장(2016년 20.6년)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홀로 수십 년을 사느니, 서로 보듬을 짝을 찾자는 생각이 커졌다는 거다. 서울의 한 노인복지센터 관계자는 “공식 집계치는 만들지 않았지만, 이성 문제를 상담하는 어르신들이 계신다”고 말했다. 조추용 꽃동네대학교 교수(사회복지학)의 ‘황혼 동거에 나타난 생활(2012)’ 연구를 토대로 사례를 조명하고, 인식개선 방향도 짚어본다.

 

◆밥만 먹어도 행복, 자녀 도움 없이, 호적은 깨끗하게…‘3색’ 이야기

 

대장암으로 부인을 떠나보낸 A씨(83)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황혼 동거에 들어갔다. 그는 노령연금과 국가유공자 혜택에 따른 연금 그리고 세 아들이 보내는 돈으로 동거녀와의 생활비를 해결하며, 병원비처럼 큰돈이 들 때는 적극적으로 아들 도움을 받는다. 슬하에 4남매를 둔 A씨의 동거녀는 30대에 남편을 잃고, 식당을 운영하며 수십년간 살았다. 두 사람은 예전에는 홀로 밥 먹는 게 익숙했지만, 이제는 상대 없는 밥상이 싫다며 “(만든 음식이) 맛있든 없든 둘이 먹는 게 좋다”고 새로 찾은 행복에 겨워했다.

 

B씨(77) 커플은 생활비를 스스로 마련한다. B씨에게 논밭이 있어서 식재 확보도 어렵지 않고, 돈도 부족하지 않아서다. 덕분에 다리와 허리를 수술한 동거녀의 병원비도 B씨는 무리 없이 댔다. 광산 관리직이었던 동거녀의 남편 사망 후 나오는 연금을 합하면 자녀 도움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단다. B씨는 “(나오는 돈으로) 반찬값은 충분하다”며 “남의 여자를 데리고 사니까, 화장품도 사고 간식비도 줘야 한다. 가스비나 수술비나 병원비 그런 것들에 내 돈이 들어간다”고 밝혔다.

 

30여년간 동거해온 C씨(85) 커플은 시작부터 자녀 반대에 부딪혔다. 동거녀는 애초부터 혼자여서 문제없지만, C씨는 찬성한 아들과 달리 네 딸의 거센 반대로 애를 먹었다. 난관을 극복하고 지금에 이르렀으며, 자녀의 엇갈린 생각을 고려한 듯 두 사람은 ‘깨끗한 호적’을 위해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 각자 생활비도 터치하지 않았다. 젊어서는 여행과 등산으로 취미를 같이 했지만, 몸이 예전 같지 않다며 C씨의 동거녀는 “이제는 그에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고 말했다.

 

성(性)적인 욕구 해소가 황혼 동거의 목적은 아니지만, 여러 질병 등을 이유로 과거보다 신체기능이 떨어진 탓에 이들은 적잖은 성관계의 어려움으로 상대방에게 다소 미안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대신 이들은 손을 잡거나 대화, 마사지 등으로 욕구를 해소하고 있었다.

 

◆아파트는 자식에게 명의이전…혼인신고는 없이

 

뒤늦은 황혼 로맨스도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이전 배우자를 보내고 받은 상처와 외로움이 새롭게 만난 짝을 사별로 보낸 후 더욱 깊어지거나, 동거인 또는 자녀가 얽힌 재산 문제로 괴로워하는 이들도 더러 있다.

 

그래서일까. 일부 황혼 동거인들은 △지금 사는 아파트를 원래 식구에게 명의이전 하겠다거나 △동거녀에게 일부 재산을 주는 대신, 자녀 몫으로도 얼마를 떼어 놨으며 △혼인신고하면 그 사람(동거인)의 지분이 들어가므로 우리 가족에게 손해라는 등 재산 문제와 관련해 다양한 속내를 드러냈다.

 

서울 중구청 주최로 명동의 한 웨딩홀에서 열린 ‘어르신 사랑 효도미팅’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가위바위보 게임을 즐기고 있다. 사진은 2013년 7월26일 촬영. 연합뉴스

◆‘늙어 이성교제는 주책’…부정적인 시각 개선은?

 

한편, 나이나 체면, 가족이 얽힌 문제라는 이유로 노인의 이성교제를 보는 부정적인 시각도 많다.

 

한정란 한서대 교수(보건상담복지학)는 통화에서 “황혼 재혼(동거 포함)은 당사자, 자녀 그리고 자녀의 가족까지 연결되는 복잡한 구조”라며 “새아버지(또는 새어머니)의 부양도 떠안을 수 있다는 불안 탓에 부정적으로 보게 된다”고 분석했다. 이어 “자녀들은 물려받을 재산을 나눠야 할 ‘새로운 자녀’가 늘어나는 것을 반기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사랑은 젊은이의 전유물이라며 노인의 이성교제를 향한 일부 부정적인 시각에 전문가들은 노인을 하나의 인격체로 이해하고, 그들의 감정을 자연스러운 사회현상으로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 교수는 “노인은 무성(無性)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도록 노인 이해 교육을 활성화해야 한다”며 “노년의 성과 사랑을 공론화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금기’는 노인의 성을 음지로 숨어들게 한다면서, 재산 상속 문제에 대해서는 전문적인 상담과 조언을 얻을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