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비유럽·남미권 유망주들이 빅리그진출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 유럽 중소리그에 도전하지만 정작 빅리그행을 실현하는 선수는 많지 않다. 불확실한 리그 활약만으로 빅리그 팀들이 낯선 선수에게 눈길을 주는 일이 드문 탓이다. 그러나 무대가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유럽 각 리그 최정상급 팀들이 격돌하는 ‘꿈의 무대’에서의 활약만으로 의구심은 눈 녹듯 사라지고 어느새 스카우트 표적이 된다. 그야말로 ‘빅리그행 고속도로’에 올라선 것과 다름없다.
유럽축구연맹(UEFA) 리그랭킹 12위의 중위권리그인 오스트리아리그에서 뛰고 있는 황희찬(23)이 UCL 데뷔전에서 대활약을 펼치며 이 고속도로의 초입에 섰다. 잘츠부르크는 18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지난 시즌 벨기에리그 우승팀 헹크와의 조별리그 E조 1차전에서 6-2 대승을 거뒀다.
이 경기에 최전방 투톱 스트라이커로 나선 황희찬은 1골2도움으로 팀 승리를 이끌었다. 엘링 홀란드(19)의 선제골로 1-0으로 앞선 전반 33분 감각적인 패스로 홀란드의 두 번째 골을 어시스트했고, 1분 뒤 전방압박 상황에서 상대 수비의 볼을 탈취해 맞은 골키퍼와의 일대일 상황에서 자신의 UCL 데뷔 골까지 만들어냈다. 여기에 3-1로 앞서고 있던 전반 45분 홀란드의 해트트릭에 도움을 주며 세번째 공격포인트를 완성해냈다. 황희찬은 세 개의 공격포인트 외에도 경기 내내 헹크 진영을 종횡무진 헤집으며 상대 수비를 붕괴시켰다. 이런 대활약에 축구통계사이트 ‘후스코어드닷컴’은 경기 뒤 해트트릭을 달성한 홀란드(평점 9.5)보다 높은 10점 만점의 평점을 부여했다.
공교롭게도 이날 경기는 50여명의 스카우트들이 경기장을 찾는 등 수많은 빅리그 팀들의 관심 속에 치러졌다. 대부분은 지난 6월 폴란드 20세 이하(U-20) 월드컵 득점왕을 차지한 홀란드를 보기 위한 발걸음이었지만 황희찬은 홀란드를 뛰어넘는 활약으로 순식간에 스카우트들의 시선을 강탈해갔다. 같은 E조에 소속된 유럽 최정상팀 리버풀, 나폴리와의 조별리그 경기에서도 이런 경쟁력을 보여줄 경우 스카우트들의 본격적인 관심 속으로 들어가 빅리그의 문을 열 수 있다. 이미 황희찬의 대표팀과 소속팀 선배가 유럽대항전 활약을 통해 이를 이뤄낸 바 있다. 바로 박지성(은퇴)과 사디오 마네(27·리버풀)다. 네덜란드리그 PSV에인트호벤에서 뛰던 박지성은 2004∼2005시즌 UCL 대활약으로 EPL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스카우트됐고, 잘츠부르크에서 뛰던 사디오 마네는 유로파리그 등에서 빅리그 팀들의 눈에 띄어 EPL 사우스햄튼을 거쳐 리버풀에서 세계 최정상급 공격수로 거듭났다.
한편, 같은 날 영국 런던 스탬퍼드 브리지에서 열린 H조 조별리그 발렌시아와 첼시의 경기에서는 이강인(18)이 소속팀이 1-0으로 앞선 후반 44분 교체 투입되며 UCL 데뷔를 이뤄냈다. 이강인은 추가시간을 포함해 5분여를 뛰었고 발렌시아는 1-0으로 경기를 마무리지었다. 이로써 2001년 2월19일생으로 만 18세7개월인 이강인은 지난 시즌 바이에른 뮌헨 소속으로 UCL 데뷔를 한 정우영(20·프라이부르크)의 만 19세2개월을 뛰어넘어 역대 한국인 최연소 UCL 출전 기록의 주인이 됐다.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