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미의영화산책] 상처받은 영혼을 위하여

가정폭력을 당한 여성은 그 후유증이 평생을 족쇄처럼 따라다니며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 같은 정신적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제너레이션 부문 대상을 비롯해 전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25개의 상을 수상한 영화 ‘벌새’(감독 김보라)에서도 평범해 보이는 중학교 2학년 은희(박지후)의 가족과 친구 사이에 만연해 있는 가정폭력 문제를 가슴 아리도록 아프게 그리고 있다.

반에서 조용한 날라리로 지목된 은희는 친구 지숙과 함께 방과 후에는 명문대 입학을 구호로 외치게 하는 담임교사를 흉보며 신나게 트램폴린을 뛰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곤 한다. 풀쩍풀쩍 하늘 높이 뛸 때는 그들은 새처럼 장벽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비행을 일삼는 여고생 언니에게 무자비한 언어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는 엄마 탓으로 돌리며 폭력적인 부부싸움을 일삼는다. 은희를 노리개 삼아 폭력을 휘두르는 오빠의 주먹질은 점차 심해져 간다. 가정폭력은 은희만의 문제가 아니다. 친구 지숙은 골프채로 때리는 아버지에게 반항하다 따귀를 맞아 입술이 터져 마스크를 한 채 한문학원에 온다. 지숙과 은희는 가정폭력의 정도를 서로 터놓는다. 은희는 오빠의 폭력 때문에 유서를 써놓고 자살할까 생각도 했다고 말한다. 지숙은 ‘다들 우리에게 미안해하기는 할까’라고 중얼거린다.



마음 둘 데 없는 은희와 지숙은 장난삼아 문방구에서 도둑질을 하다 주인에게 들키게 된다. 은희는 가족이 이 사실을 아는 게 걱정된다.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는 한문학원 교사 김영지(김새벽)에게 은희는 집에 가면 오빠가 나를 죽일 것이다, 매일 개 패듯이 때린다고 터놓는다. 김영지가 넌 어떻게 하냐고 묻자 은희는 그냥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기다린다며 대들면 더 때린다며 울먹인다.

침샘에 혹이 생겨 수술하게 된 은희를 병문안 온 김영지는 “너 이제 맞지 마, 누구라도 널 때리면 어떻게든 맞서 싸워, 절대로 가만있지 마”라고 한다. 소울메이트라도 되는 듯 같은 왼손잡이인 선생님이 은희는 세상에서 가장 좋다. 그러나 그녀는 영화 배경인 1994년 당시 성수대교 붕괴라는 참상의 희생자가 됐다. 가장 사랑했던 선생님을 잃은 상처는 은희에게 깊은 멍자국을 남긴다. 우리 사회에서 개인이 받는 개인적·사회적 폭력으로 인한 상처는 이제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모두가 존중받는 풍토가 되기 위해 사회가 나설 때다.

황영미 숙명여대 교수·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