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만 공습만큼 심각하다.” 14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유전시설 2곳이 정체불명의 공격을 받아 기능이 마비되면서 국제유가와 중동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예멘 후티 반군은 사건 직후 저가 드론들이 사우디군에 탐지되지 않은 채 1300㎞를 날아가 유전시설을 공습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사우디 국방부는 잔해들을 분석한 결과를 공개하며 “이 공격은 ‘북쪽’에서 발진됐고, 의심의 여지 없이 이란의 후원을 받았다”며 “18대의 드론과 7발의 미사일이 발사됐으며, ‘델타 윙’이라는 이란 드론이 포함돼 있다”며 이란의 소행임을 강하게 시사했다. 테러 주체에 대한 논란과는 별개로 드론을 활용해 주요 전략시설에 대한 기습을 달성했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과 맞먹는 수준의 충격이 세계 각국에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갑작스런 드론 공격…대응 쉽지 않아
사우디 유전시설 공습은 기존에 알려진 공격 방식과는 전혀 다르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는다.
일반적으로 공습을 감행할 때는 전투기를 동원한다. 전투기가 적 영공에 깊숙이 침투해 목표지점에 폭탄을 투하하거나 수백㎞ 떨어진 곳에서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을 쏘고 복귀하면 공습이 완료된다. 탄도미사일을 발사해 지상표적을 타격하기도 한다. 강력한 방공망을 구축한 국가를 상대로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상대국에게 제공권을 빼앗긴 상황에서는 시도조차 쉽지 않다.
하지만 다수의 드론을 활용하면 사정은 달라진다. 전투기보다 훨씬 작은 크기의 드론은 레이더에 포착될 확률이 낮다. 탐지해도 조류 등으로 오인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지상에서 육안으로 탐지하려 해도 크기가 작은 드론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드론의 접근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채 기습을 당할 위험이 일반적인 공습보다 더 높다. 여기에 순항미사일이 더해지면 요격은 더욱 어려워진다. 수천억원을 들여 구축한 방공망이 무용지물이 되는 셈이다.
사우디는 패트리엇(PAC-3) 요격미사일을 포함해 수천억달러 규모의 미국제 무기를 구매해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1110억 달러(130조원) 상당의 무기 구매를 약속할 정도로 군사력 증강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이번 공격을 막지는 못했다.
순항미사일이나 드론은 전투기, 탄도미사일보다 낮게 비행해 레이더 탐지가 어렵다. 뒤늦게 포착해도 요격에 적지 않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PAC-3는 저고도로 날아가는 미사일을 파괴할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탄도미사일 방어용이다. 방어할 수 있는 범위도 좁다. 방어체계를 만들어도 국가주요시설을 노리고 날아드는 드론을 100% 요격한다는 보장이 없는 이유다.
드론 공격에 대응하는 방법들이 제시되고 있으나 실효성에는 한계가 있다. 전파방해를 실시해 드론이 비행경로를 이탈하게 하는 방안이 있으나, 주민들이 사용하는 전자기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요격 수단으로 주목받는 레이저 대공무기는 개발단계에 머물고 있다.
반면 드론을 운용하는 군대는 전략적 이점이 많다. 후티 반군이 사용하는 드론은 이란의 기술이 적용된 것으로 미국제 MQ-9 무인기처럼 첨단 기능은 없지만, 위성항법장치(GPS)의 유도를 받아 사전에 설정된 좌표를 타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드론에는 조종사가 탑승하지 않아 인명 피해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폭발물을 탑재한 채 표적에 낙하하는 자폭 드론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이유다.
제작이 쉽고 비용이 저렴하며 구조가 단순해 운영유지가 편리하고 위성항법장치(GPS)까지 갖춰 정밀한 비행이 가능한 드론은 무장세력도 어렵지 않게 다룰 수 있다. 사우디 유전시설 피격으로 드론 공격 전술을 구상할 수 있는 군사적 역량만 갖추면 다수의 드론을 동원한 공습도 가능한 시대가 열렸다. 강력한 군사력을 갖춘 국가도 압도적 우위를 장담할 수 없는 ‘드론 공포’가 현실화된 것이다.
◆산업 시설 노린 비대칭 공격 재발 가능성
사우디 유전시설을 겨냥한 공격은 산업 시설이 드론 작전의 표적이 될 가능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지난해 5월 미국이 일방적으로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에서 탈퇴한 직후 중동 지역에서는 이스라엘이 미국의 지지를 등에 업고 친(親)이란 군사조직을 상대로 군사행동에 나서는 모양새다.
이스라엘은 지난 7월 F-35A 스텔스 전투기를 동원해 이라크 내 시아파 민병대 기지를 공습했다. 이 공습으로 이란 혁명수비대(IRGC)나 헤즈볼라(레바논의 친이란 무장정파) 대원들이 숨지고 이란산 로켓포가 파괴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공습은 이란과 인접한 이라크 내 시아파 민병대를 공격했다는 점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스라엘은 지난 8일(현지시간) 시리아-이라크 국경에 위치한 시리아 도시 부카말의 친이란 민병대 무기고를 공습해 18명이 사망했다. 지난달에는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남동쪽에 있는 아크라바 마을을 공습해 헤즈볼라 대원 2명이 숨졌다.
여기에 이란의 위협을 이유로 미국이 우방국과 함께 결성하려는 ‘호르무즈 호위 연합’에 이스라엘이 참여하겠다고 밝히면서 이란을 겨냥한 이스라엘의 공세와 압박 강도는 더욱 높아졌다.
미국과 이스라엘에 정면으로 맞서기 어려운 이란으로서는 전통적 방식의 공격보다는 드론을 활용한 기습이 더욱 효과적이다. 이란군이 직접 나서는 대신 예멘 후티 반군과 레바논 헤즈볼라, 이라크 남부 시아파 민병대 등을 앞세우면 미국의 보복을 피할 수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사우디의 석유 산업 시설은 이란의 위협에 계속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이번 공격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중동정세가 흔들리면서 저가 드론 몇 대로도 큰 정치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사우디의 산업시설이 드론 공격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부각시켜 글로벌 경제 시장에 공포를 조성하는 것만으로도 이란의 ‘반격’은 성공하는 셈이다. 사우디를 흔들어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압박을 지속하는 것을 견제하는 부수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사우디 정부에 불만을 품은 자생적 테러 조직이나 이슬람 급진세력에 의한 모방 테러 가능성까지 감안하면 사우디 석유 산업 시설에 대한 공격 시도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드론은 상업적으로 얻기 쉽고 손쉽게 무기화할 수 있는 특성을 갖고 있다. 이슬람국가(IS)를 비롯한 무장세력들도 상업용 드론을 개조해 군사작전에 활용한 바 있다. 하지만 사우디 유전시설 공격은 전통적인 공습작전을 대신해 저가 드론이 적 내륙 깊숙한 곳에 있는 전략시설을 타격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했다. 드론이 앞으로 전투를 더 어렵게 만들고 국제분쟁의 성격을더욱 복잡하게 바꿔놓을 잠재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될 가능성이 높다.
북한도 300~400대의 드론을 운용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란과 북한이 긴밀한 군사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란의 드론 공격을 북한도 예의주시하며 대남 전략에 활용할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 탄도미사일과 방사포 위협에 드론 공격까지 더해지면 우리 군의 유사시 대응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드론 공격 기법의 확산 저지와 연구에 우리 군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