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서울 강남경찰서 소속 ‘시보순경’이었던 A씨는 경기 용인의 한 식당에서 술을 마신 뒤 차량을 운전해 귀가하다 경찰의 음주운전 단속에 적발됐다. 당시 A씨는 정규 경찰공무원이 되기 전, 1년간 자질 및 적격성을 평가받기 위해 ‘시보임용’된 상태였다. 적발 당시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92%로 면허취소 수준이었다. 이로 인해 감봉 이상의 징계 처분을 받은 A씨는 시보기간이 끝난 뒤 정규임용 여부를 판단하는 정규임용심사위원회에서 직권면직됐다. 하지만 이에 불복한 A씨는 면직처분이 과하다는 소청을 제기했고, 소청심사위원회에서 이를 받아들여 이후 A씨는 정규 경찰로 임용됐다.
경찰이 음주운전을 한 대부분의 시보경찰관에게 면직처분을 내리고 있지만, 이 중 실제 면직되는 경우는 드문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 내부에서는 소청심사과정에서 음주운전으로 인한 면직처분이 과하다는 결론이 이어지자, 음주운전을 면직사유에서 제외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경찰은 높은 도덕성이 필요한 직종인 만큼, 음주운전 시보경찰관에 대한 면직처분은 계속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26일 경찰청과 전국 18개 시도경찰청에 따르면 2012년부터 올해 7월까지 시보기간 중 음주운전으로 징계를 받은 경찰은 총 24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경찰청 소속이 6명으로 가장 많고, 이어 경기남부청(4명), 인천청(3명), 경남·충남청(2명), 강원·광주·대구·대전·부산·울산·전남청(1명) 순이었다. 올해 음주운전으로 징계 처분 된 시보경찰공무원만 3명(광주·경기남부·충남청)이고, 이 중 한 명은 만취(혈중알코올농도 0.209%) 상태로 운전 중 사고까지 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들을 정규 경찰로 임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보고, ‘경찰공무원임용령’과 ‘시보경찰공무원 인사관리지침’ 등을 통해 이들에게 정규임용심사위원회에서 면직처분을 내리고 있다. 하지만 세계일보 취재 결과, 이들 중 실제 면직·해임 등으로 정규 임용되지 않은 경우는 5명(아직 정규임용심사를 받지 않은 시보경찰관 제외)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시보경찰관들이 이후 소청심사위원회나 행정소송 등을 통해 면직처분 취소 결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경찰 내부에서는 이처럼 소청심사에서 음주운전에 따른 직권면직 처분이 과하다는 이유로 면직이 취소되는 현실을 반영해 음주운전을 직권면직 사유에서 삭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6월 경남경찰청 청문감사담당관실은 ‘시보경찰공무원 인사관리 지침 개정 건의’ 문서를 통해 정규임용의 적격성을 심사할 때 다양한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음주운전처럼 특정 징계사유만으로 직권면직시키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한 처분이라고 평가했다.
경남청은 음주운전을 면직처분 사유에서 삭제해 직권면직과 소청심사, 그리고 복직으로 이어지는 반복적이고 불필요한 행정행위를 막고, ‘시보경찰공무원 인사관리지침’으로 음주운전 등 면직처분 사유에 해당할 경우 ‘면직처분을 하여야 한다’고 강행 지시한 부분을 ‘면직처분을 할 수 있다’로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건의했다.
하지만 경찰은 높은 도덕성과 윤리성을 요구받는 직종인 만큼, 시보기간 중 음주운전처럼 비윤리적 행위자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통해 자질을 확인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곽대경 동국대 교수(경찰행정학)는 “시보기간 중 음주운전을 하는 것처럼 경찰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경우, 정식 경찰이 되기 전에 잘라내야 이후 더 큰 문제를 막을 수 있다” 며 “소청심사를 통해 복직되더라도 해당 경찰에게는 이러한 징계 과정이 차후 경찰로서 문제 되는 행동을 억제하게 하는 교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인식하고, 시보경찰관과 관련된 인사 규정 전반을 개선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시보경찰관의 직권면직 처분 규정이) 개혁 과제에 들어가 있지만, 어떤 식으로 개정할지에 대해서는 답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시보경찰공무원의 관리·평가 부분에 대해 전반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강진 기자 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