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적 감성을 담아 노래하는 서율(書律) 밴드가 8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두 편의 시를 음악에 담았다. 백석 시인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1938년)과 문태준 시인의 ‘우리는 서로에게’(2018)에 곡을 붙여 디지털 앨범으로 발표했다.
백석은 토속성과 모더니즘을 넘나들며 새로운 서정시의 세계를 열었던 당대 제일의 ‘모던 보이’다. 백석의 삶과 사랑은 그 동안 연극과 뮤지컬로 제작되면서 작품 못지않은 감동을 많은 사람들에게 안겼다. 아울러 문태준은 김소월과 백석에서부터 김용택 등 전통 서정시의 계보를 잇는 시인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서율은 두 편의 시가 가진 내·외적 운율을 멜로디로 형상화하는 데 오랜 시간 고심해왔다.
백석의 서정시가 이름다운 이유 중 하나는 관서(關西) 지방의 토속어들이 풍부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속 토속어(마가리, 고조곤히)와 입말은(응앙응앙)은 함흥의 겨울 풍경과 연인이었던 자야를 향한 절절한 사랑을 생생하게 전한다.
서율 밴드는 이 시의 1연 “가난한 내가 /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를 후렴구로 만들어 보다 더 강조한다. 작곡을 맡은 김대욱 씨는 “‘눈’과 ‘고백’이라는 면에서 지금은 물론 이후의 그 어떤 노랫말도 넘어설 수 없는 참신함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안도현 시인 역시 '백석 평전'에서 이를 두고 “첫눈이 내리는 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말은 백석 이후에 이미 죽은 문장이 되고 말았다”고 극찬했다.
노래의 후반부는 전반부와 전혀 다른 멜로디와 이펙터를 입힌 보컬이 등장하는데, 이러한 변화가 곡의 서정성을 고조시킨다. 인문학 칼럼니스트이자 서율의 대표인 현상필 씨는 “시 속에 펼쳐진 흰 배경처럼 흐르는 피아노 선율, 그 위에 눈꽃처럼 내리는 보컬이 매력적인 곡”이라고 소개했다.
백석의 시에 앞서 지난 6월에 발표한 ‘우리는 서로에게’는 문태준 시인이 지난해에 발표한 7번째 시집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에 수록된 동명시를 노랫말로 삼은 곡이다. 사랑은 불변의 가치이지만 사랑의 대상은 그 속에서 끊임없이 다른 모습들로 존재한다. 우리는 ‘애증’이라고 짧게 부르는 이 복잡미묘한 감정의 단면들을 여러 은유를 통해 보여준다. 익숙한 단어로 표현된 신선함이 돋보이는 ‘은유들의 보석상자(작성주 시인)’라고 할 수 있다.
곡을 쓴 서율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 김대욱 씨는 “이 시를 연인을 위한 세레나데처럼 불러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곡의 장르는 보사노바로, 부드럽고 서정적인 멜로디를 한껏 살린 것이 특징이다.
이와 관련해 서율 밴드는 오는 11월 2일 남해유배문학관에서 문태준 시인과 함께 ‘제10회 김만중 문학상 기념 콘서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김정환 기자 hwani89@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