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행이라는 문화 경험을 누구나 보편적으로 즐기는 시대에 살고 있다. 가지 못할 공간이 거의 없어졌고 물리적으로도 그리 어렵지 않게 어디든 갈 수 있는 세상이 됐다. 불과 30여년 전, 여행금지 국가가 즐비했던 데 비하면 그야말로 커다란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말할 것도 없이, 미지의 공간에 대한 문화적 호기심과 그에 따른 탐험정신을 필요로 하는 여행은, 짧은 시간 자신을 타자화함으로써 새로운 자아 찾기에 나서는 행위이다. 물론 그것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회귀형 구조를 띠게 마련이어서, 돌아오면 누구나 ‘집이 제일 좋다’라는 일성을 터뜨리게 된다. 아니 어쩌면 사람들은 집이 제일 좋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불편하고 어려운 여행을 떠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과거에는 다른 이들의 글이나 예술작품을 통해 자신이 못 가본 곳을 상상하는 데 머물렀던 이들이, 요즘에는 여행 가이드북을 손에 들고 사막이든 산악이든 오지든 도시든 직접 찾아다니게 됐다. 독서시장을 둘러보아도 여행 관련 서적은 ‘탐방기’ ‘여행기’라는 이름으로 최상위에 올라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전통이 전혀 없었던 시기에는 몇몇 여행가들이 남겨준 인상기만이 존재했는데, 요즘은 그러한 흐름에서 벗어나 테마별로, 지역별로, 종교별로 특화한 여행서적이 대중과 한결 가까워진 것이다. 어쨌든 여행은 다시 돌아온 ‘나’가 예전의 자신이 아니라는 성숙의 순간을 발견하는 속성을 띠면서 타자의 경험을 내면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새로워진 자아에 이르는 과정을 함의한다.
그 가운데 근대문명을 표상하는 도시를 떠나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감싸는 자연 사물을 만나보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이 결핍되고 과잉돼 있는지를 성찰하게 해주는 중요한 실천이다. 그것은 인간 욕망이 닿지 않은 순수 원형의 속살을 만나는 절차이기도 할 것이다. 근대적 효율성에 의해 사라져가고 있지만 그 사라짐의 눈부심으로 하여 역설적으로 빛나는 생태적·문화적 원형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 인간과 자연이 이루는 비대칭적 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얻고, 고가의 ‘관광’과는 전혀 다른 ‘여행’의 진수를 경험하게 된다. 나아가 시선의 욕망을 채워가는 관광이 자연이나 풍경에 얼마나 폭력적이 될 수 있는가를 반어적으로 성찰하게 된다.
유성호 한양대 교수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