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위험성향 판정 증권사마다 ‘제멋대로’ 제2의 DLF사태 우려

‘초고위험성향’ 고객의 비율 / 최저 15%·최고 61% 큰 차이 / 고객의 투자성향 잘못 판단 / 불완전 판매 이어질 가능성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DLS-DLF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의 국정조사 촉구 기자회견 및 호소문 발표에서 피해자가 피켓을 들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시스

증권사마다 투자자 위험성향을 제각각 기준으로 분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똑같은 투자자를 놓고서도 증권사에 따라 투자성향을 ‘중위험’으로도, ‘초고위험’으로도 판단할 수 있다는 얘기다. 투자자 위험성향 판단에 따라 위험 상품 가입권유가 달라지는 것을 감안하면 증권사들의 투자위험 판단이 주먹구구식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29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국내 상위 10대 증권사별 ‘초고위험’ 성향 개인 고객 비율은 최저 15.0%에서 최고 61.4%로 격차가 컸다.



초고위험 성향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신한금융투자였다. 전체 고객 4만9086명 중 3만116명(61.4%)을 초고위험 성향 투자자로 분류하고 있다. 이 증권사 분류상 고위험 투자자는 8096명(16.49%), 중위험 투자자는 2768명(5.64%)이었으며 저위험 투자자와 초저위험 투자자는 각각 4266명(8.69%), 3840명(7.82%)이었다.

신한금투에 이어 메리츠종금증권의 초고위험 투자자 비율도 53.66%로 높았다. 고객 2명 중 1명 이상을 초고위험 투자자로 보고 있는 셈이다.

삼성증권(48.42%), 한국투자증권(45.49%), 하나금융투자(30.38%)도 초고위험 투자자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반면에 대신증권은 전체 고객 중 15.0%만이 초고위험 성향 투자자로 분류하고 있었다. 10대 증권사 중 초고위험 성향 투자자 비율이 가장 낮았다.

미래에셋대우(27.5%), KB증권(26.61%), 키움증권(20.20%), NH투자증권(17.7%) 등도 해당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대신증권에서 ‘중위험’으로 분류된 투자자가 신한금투에 가면 ‘초고위험’ 성향으로 묶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보통 증권사는 금융투자협회가 정한 ‘표준투자권유원칙’을 바탕으로 투자자 정보를 확인하고 투자자 유형을 분류한다.

표준투자권유원칙에 따르면 초고위험 성향은 투기등급의 회사채, 변동성이 큰 펀드 등이 있다. 흔히 안정성이 뛰어나다고 알려졌던 원금비보존형 주가연계증권(ELS)·파생결합증권(DLS)도 위험도가 높은 상품으로 분류돼 있다.

원칙상 금융사 임직원은 투자자에게 상품을 권유하기 전에 투자자 정보를 정보 확인서에 맞춰 파악하고 이에 따라 분류된 투자자 성향에 따라 적합한 상품을 추천해야 한다.

증권사마다 투자자 성향이 제각각인 이유는 증권사가 자율적으로 투자자에 대한 문항과 배점 기준, 투자 적합성 판단 방식을 정하기 때문이다. 또한 투자자에게 적합한 자산의 세부적인 유형도 증권사마다 다른 기준으로 판단한다.

투자자 위험 성향 판단이 증권사별로 제각각인 데다가 비율도 큰 차이를 보이면서 표준투자권유원칙이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더 나아가 투자자가 금융상품에 대한 잘못된 판단으로 불완전판매의 여지가 생기는 등 ‘제2의 은행권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F)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제윤경 의원은 “상품을 팔아야 하는 증권사에 투자자 성향 파악 기준을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라며 “증권사별 영업력에 따라 고객위험성향 좌지우지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