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사회에서는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는 것을 중요한 과업으로 여겼다. 그것은 유교의 실천 덕목이었다. 그렇지만 ‘접빈객’(接賓客)의 내용과 방식은 집안 형편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서민 가정에서도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손님 접대를 위해서 장기 보존이 가능한 식품을 준비해 두려고 노력했다. 모두가 가난하게 살던 시기에는 ‘접빈객’이 힘들었기 때문에 그만큼 사회적으로 중요했다. 그러나 생활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된 1970년대 후반 이후 ‘접빈객’ 과업은 점점 약해졌고, 그 내용과 방식도 크게 바뀌었다.
오늘날 한국인이 타인을 집에 초대하여 대접하는 형태로는 이사·신혼·입사 등으로 인한 입주(入住) 후 ‘집들이’가 있다. 집들이 때, 집주인은 손님에게 “이렇게 좁고 누추한 곳을 찾아주어 대단히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고, 손님은 “번거로우실 텐데 저까지 초대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답례한다. 집주인은 호화로운 음식을 상다리가 부러지게 많이 제공하면서도, 말로는 “차린 것은 없지만 많이 드세요”라고 말하고, 손님은 “산해진미(山海珍味)가 가득합니다”라고 답인사를 한다.
요즘 한국인은 돌잔치·결혼식·팔순잔치·장례식 등 대부분의 가정 행사를 집 밖 장소에 타인을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며 치른다. 으리으리한 곳에 손님을 모신 경우에도, 초청자는 “누추한 곳에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고, 손님은 “이렇게 좋은 곳에 저를 불러 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답례를 한다. 음식이 나오면, 초청자는 “음식이 변변치 않지만, 저의 성의를 생각하셔서 많이 드세요”라고 말하고, 손님은 “진수성찬입니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릅니다”라고 답인사를 한다. 뷔페식당에 손님을 초청하고도 이런 말을 주고받는 게 관행이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과학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