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으로서 저는 돈과 예술과 기술이라는 군대를 이끌며 자신의 ‘레고들’을 통해 세상을 재창조하거나 재구성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어린아이 제왕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영화감독의 에고가 추방되어야 할 때, 작가로서의 저는 자신의 외로움 속에 묻혀 빈 페이지 앞에 질질 짜며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공쿠르상 수상작가 아틱 라히미의 말이다. 아프가니스탄 출신인 그는 프랑스에서 소설가이자 영화감독으로 살고 있다. 영상이 장악한 디지털 시대에 글과 영상 사이를 오가는 그의 말은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그는 “소설가인 제게 삶이 글쓰기의 소재이듯이, 영화인인 제게 제 소설은 영화의 소재”라면서 “글을 쓰거나 영화를 찍을 때의 유일한 관심사는 다른 매체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어떤 특별한 형식을 찾아내는 데 있다”고 말한다.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던 영국 작가 데이비드 솔로이는 문학의 고유한 효용을 더 강조하는 편이다. 그는 “문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화면상으로 재현하기 불가능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면서 “이러한 원칙을 내 작품에도 적용하려고 노력하는데 각색이 얼마나 까다로울지 생각하면 묘한 쾌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보다 구체적인 이들의 말은 5일부터 13일까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는 ‘2019서울국제작가축제’에서 직접 들을 수 있다. ‘우리를 비추는 천 개의 거울’이라는 큰 주제 아래 작가들이 서너 명씩 모여 ‘수다’를 나누고, 소주제를 정해 일대일로 마주 앉아 토론을 벌이는가 하면, 소설과 시를 순수하게 ‘듣는’ 시간도 마련된다. 해외 작가들이 개별적으로 대학과 독립서점을 방문하는 ‘작가의 방’도 12회에 걸쳐 서울 시내 여러 곳과 부산 백년어서원에서 열린다. 한국문학번역원(원장 김사인)이 2006년부터 격년으로 개최해온 이 축제는 서울문화재단(대표 김종휘), 서울디자인재단(대표 최경란)과 공동으로 올해부터 매년 개최하는 원년 행사다.
소설가 성석제와 마주 보는 중국 ‘마오둔 문학상’ 수상 작가 류전윈은 ‘나는 남편을 죽이지 않았다’는 소설을 출간했다. 평범한 중국 농촌 여성이 억울하게 몰려 법정투쟁을 벌이는 내용인데, 이 여성이 아무도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자 오직 자기 집 안에 있는 소 한 마리 앞에서만 속에 든 말을 하는 장면을 보고 네덜란드 독자가 통곡했다는 말을 류전윈은 전한다. 그는 “이 말을 들었을 때 처음으로 작가라는 존재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 기분이었다”며 “작가는 다름 아닌 한 마리 ‘소’였던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20여 종 문자로 번역된 이 소설의 세계 곳곳 독자들이 ‘자신의 삶 속에 전혀 아무런 무게도 지니지 않았던 사람’ 곁에 쪼그리고 앉아 말을 들어준 셈인데, 이것이 바로 문학의 힘이라고 역설한다.
이들 외에도 해외에서는 올해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 시인 포레스트 갠더를 필두로 그레임 맥레이 버넷(영국), 니콜라 마티외(프랑스), 알렉산드라 치불랴(러시아), 이시이 신지(일본), 마이 반 펀(베트남), 챈드라하스 초우두리(인도), 빅토르 로드리게스 뉴녜스(쿠바), 모나 카림(쿠웨이트) 등 14명이 참가한다. 국내에서는 윤흥길 문정희 최승호 이승우 김수열 정연선 배수아 황규관 전성태 손택수 정한아 황정은 김금희 한유주 박상영 등 18명이 이들을 맞는다. 사전 예약은 축제 웹사이트(siwf.or.kr)와 네이버 예약을 통해 가능하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