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연쇄 성폭행 살인용의자 이춘재의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 자백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진술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최악의 미제 성폭행연쇄살인사건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과학수사가 엉뚱한 범죄자를 빚어낼 수 있다는 우려는 물론 경찰이 무고한 시민을 옥살이시켰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기 때문이다.
경기남부경찰청 수사본부 관계자는 6일 “이춘재가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과 청주와 수원의 성폭행 연쇄살인 사건 등 자신의 소행으로 밝힌 14건에 대해 신빙성 확인작업을 벌이고 있다”며 “특히 범인이 검거돼 21년간 옥살이를 하고 나온 화성 8차 사건의 경우 국민적 관심이 쏠리는 상황이어서 관계자들을 상대로 세밀한 검증작업에 나섰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춘재가 어떤 식으로 8차에 대해 설명하며 자백했는지에 대해서는 “수사 중이라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8차 사건은 1988년 9월16일 당시 화성군 태안읍 한 가정집에서 잠자던 박모(13)양이 하의가 벗겨진 채 살해된 사건으로, 인적이 드문 야외에서 벌인 9건과는 달랐다. 대담하게 피해자 집에서 범행이 벌어진 데다 피해자의 속옷 등으로 재갈을 물리거나 얼굴을 덮어씌우고 매듭을 지어 묶는 화성사건의 전형적인 수법을 사용하지 않아 수사 당시부터 모방범죄로 분류됐다.
경찰은 국과수 등으로부터 체모의 혈액형이 B형이며, 체모에 다량의 티타늄이 함유됐다는 내용을 전달받은 뒤 이 조건에 맞는 윤모(당시 22세)씨를 검거해 자백까지 받았다. 농기계 수리공이었던 신체장애인 윤씨는 수감 뒤 자신은 “범인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인터뷰를 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이 때문에 경찰은 이춘재 자백의 신빙성을 확인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이와함께 이춘재가 자백한 화성사건 이외의 나머지 4건에 대해서도 검증작업을 벌이고 있다. 4건은 1987년 12월24일 외출했다가 1988년 1월4일 수원 화서역 인근의 한 논에서 발견된 여고생 사건과 이듬해인 1989년 7월 수원시 오목천동의 한 야산 밑 농수로에서 발견된 또 다른 여고생 사건 등 2건과 충북 청주에서 발생한 2건의 미제사건이다.
이 가운데 1건은 1991년 1월27일 오전 10시50분쯤 청주시 가경동 택지조성 공사장 콘크리트관 속에서 방적 공장 직원 박모(당시 17세)양이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당시 박양은 지름 1 콘크리트관 속에서 속옷으로 입이 틀어막히고 양손이 뒤로 묶인 상태에서 목졸려 숨져 있었다. 사건 현장은 택지개발공사 현장으로 곳곳에 2.5 깊이의 하수관로가 놓여 있었고, 평소 공사장 관계자 외 인적이 드믄 곳이었다. 환경적으로도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벌인 곳과 비슷했다.
이듬해인 1992년 6월24일 청주 복대동 상가주택에서 주인 이모(당시 28세)씨가 하의가 벗겨지고 전화줄로 목이 졸려 숨진 채 발견됐다. 이 두 사건이 발생할 당시인 1991년 전후로 이춘재는 경기도 화성과 충북 청주 공사현장을 오가며 포클레인 기사로 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94년 1월 처제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 성폭행하고 살해하기까지 이춘재는 청주에서만 3차례 성폭행연쇄살인을 저지른 셈이다.
수원=김영석 기자 lovekoo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