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원
찬바람
줄달음질하는 늦가을 농수로에 투영된
서역으로 떠나가는 이른 아침의 창백한 달그림자를
심호흡으로 빨아들인
흰나비 같은 내 넋을
훔쳐 가곤 하는 달의 상아孀娥여신을
애인이라고 여기는
망상 한 자락
간밤 그대 잠깐 내려와
내가 밟아갈 산책길 가장자리에
내 차가운 가슴을 덥히기 위해
호오, 호오 불어 놓았구나
여신의 입 비린내 나는
황금빛 뜨거운 숨결을
-신작시집 ‘꽃에 씌어 산다’(문학들)에서
●한승원 시인 약력
△1939년 전남 장흥 출생 △1968년 ‘대한일보’에 ‘목선’이 당선돼 작품활동 시작 △시집 ‘열애일기’ ‘사랑은 늘 혼자 깨어 있게 하고’ ‘노을 아래서 파도를 줍다’ ‘달 긷는 집’ ‘사랑하는 나그네 당신’ ‘이별 연습하는 시간’ △장편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 ‘동학제’ ‘해산 가는 길’ 등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김동리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