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분.”
지난 10일 오후 서울에서 배달원을 하고 있는 이모(50)씨의 휴대전화 배달대행 앱(애플리케이션)에 음식점 이름, 목적지까지 거리. 조리시간 등이 표시됐고 이어 배달까지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이씨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35분. 이 시간동안 이씨는 해당 음식점으로 찾아가 음식을 받은 뒤 고객에게 전달까지 완료해야한다. 시간 내 배달에 성공하면 배달대행업체는 500원가량의 인센티브를 배달원에게 쥐어준다. 이를 위해 배달원들은 오토바이 속력을 높였다. 하지만 앱에 표시된 시간은 목적지와 직선거리를 기준으로 하는데 교통상황, 날씨, 지형, 건물위치 등이 고려되지 않아 배달시간을 맞추기 위해 배달원들은 무리한 운전을 감수해야 했다. 태풍이 와도 눈이 와도 배달 시간에 변화는 없었다.
또 다른 배달대행 업체의 기본 배달시간은 조금 여유가 있지만 힘들긴 마찬가지다. 이모(45)씨는 “배달 앱이 직선거리만으로 따져 기본 45분으로 시간을 부여해놓고 초과하면 고객의 변심, 취소 책임을 우리에게 돌린다”며 “눈이나 비가 오거나 엘리베이터에 갇히면 오롯이 배달원 탓으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이런 압박에 결국 무리한 운전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집(프로그램)을 위험하게 지어놨는데 거기에 우리가 살고 있다”며 “주변 배달원들을 보면 사고를 경험한 사람이 80%가까이 된다”고 한숨 쉬었다.
◆ 치열해진 배달경쟁…배달 산재 사고 3년 새 2배 넘게 증가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실이 지난 1일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퀵서비스 회사 산재현황’에 따르면 배달 산재 사고 신청 건수는 2016년 277건에서 지난해 618건으로 2배 넘게 증가했다. 올해도 지난 7월 기준 600건이 발생해 최근 배달앱 사용증가로 사고건수도 덩달아 급증하는 모양새다. 일부 배달원은 사고를 당해도 배달활동에 지장을 빚을까 산재를 신청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 실제 사고건수는 더 많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나날이 치열해지는 배달경쟁은 이들의 위험을 가중시키고 있다. 음식 주문 앱의 발달로 배달대행업체와 배달원들의 수가 우후죽순 늘어나 빠른 배달 경쟁은 더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최근 업계 상위 업체들은 신규 배달원을 공격적으로 모집하고 있었다. 한 업체는 기존 배달원에게 건당 3500~4000원으로 주는 배달 단가를 신규 배달원을 상대로 건당 6000원까지 높여주는 정책을 시행했다. 일부 업체는 자전거, 전동킥보드 등을 통해 배달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까지 만들었다. 한 배달업체 소속 배달원 강모(37)씨는 “50명이면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범위를 450명이 돌고 있다”며 “수익도 2년 전보다 3분의 1가량으로 줄었다”고 했다.
◆ 1000만원에 달하는 오토바이 보험료…사고위험에도 의무보험만
오토바이의 비싼 보험료는 배달원들을 더욱 압박하고 있다. 배달원들 사이에서는 “오토바이 보험료가 스포츠카보다 비싸다”는 푸념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배민라이더스, 요기요플러스, 바로고 등 상당수 배달대행업체들은 배달원들을 직접고용이 아닌 위수탁제(지입제)로 고용하고 있다. 배달원이 자신의 오토바이를 이용해 배달을 하고 건당으로 배달료를 받는 식이다. 결국 배달원들은 사고를 대비해 따로 보험에 가입해야 하는데 배달원 노조 ‘라이더유니온’에 따르면 20대 초반 오토바이 무경력자가 보험에 가입하려면 연 1000만원 수준의 보험료를 내야한다. 이 때문에 상당수 배달원들은 렌털 업체에서 오토바이를 빌린 뒤 업체 명의로 자기차량손해(자차)를 제외한 유상종합보험을 들고 있었다. 이렇게 해도 300~500만원의 보험료가 든다는 게 배달원들의 설명이다. 배달원 강씨는 “나이가 어린 배달원들은 유상종합보험에 가입안하고 책임보험만 들고 다니는데 그건 12대 중과실 보장이 안된다”며 “횡단보도에서 사람이 갑자기 튀어나와 사고가 나도 개인합의를 봐야하는데 금전적인 능력이 없어 힘들어하는 친구를 여럿 봤다”고 말했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이륜차의 지난해 책임보험 가입률은 43.4%에 불과했다. 책임보험 가입자 대비 ‘대인배상Ⅱ담보’와 ‘자기신체손해담보’ 가입자의 비율은 2016년 기준 각각 20.2%, 10%였고 자차는 0.7%밖에 되지 않았다. 라이더유니온 측은 “오토바이 고액 보험료 문제 해결을 위해선 사고율을 낮추기 위한 정부차원의 종합대책이 필요하다”며 “외국에 비해 대단히 허술한 이륜차 면허시험을 강화하고 국가공인자격조차 없는 이륜차 정비체계 구축, 안전교육 의무화, 블랙박스 설치, 산재보험 가입률 확대 등의 조치를 통해 민간보험사가 보험료를 합리적으로 조정할 근거를 마련해야한다”고 꼬집었다.
◆ 근로기준법 기준 못받는 배달원…“플랫폼 노동에 대한 논의 필요”
배달원이 사실상 배달대행업체 소속으로 일하고 있지만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닌 ‘특수형태근로자’로 분류돼 있다. 따라서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해 업체들이 배달원들의 안전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배달대행업체는 앱을 통해 수수료를 받고 음식점과 배달원을 연결해줄 뿐 고용주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배달원들은 업체로부터 사실상 업무지시와 관리를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배달원 정모(46)씨는 “오전 9시부터 밤 12시까지 본인이 원하는 시간을 회사와 협의해서 일을 하게 되는데 시간을 어기면 불이익을 받게 된다”며 사실상 출퇴근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른 배달원도 “회사가 노동자 기준을 피하기 위해 월급대신 주급을 주고 계약서도 위촉직으로 쓰는데 그러다보니 배달 시간이 늦으면 회사 맘대로 단가를 낮추거나 배달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을 배달원에게 지우는 등 근로기준법에 적용받지 않는 갑질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한 유명 배달대행업체 관계자는 “배달원들의 산재보험 가입이 법적인 의무가 아님에도 산재보험을 제공하고 있다”며 “안전 교육프로그램도 지속적으로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해당 업체 소속 배달원 이모(50)씨는 “신입으로 들어오면 안전교육을 받고 단체 카톡방에 안전에 대한 공지 글이 올라오긴 하지만 업체가 뒤로는 빠른 배달을 종용하고 있다”며 “배달 시간이 오버가 되면 포인트가 깎이고 배차제한을 걸어버리는데 이게 안전을 위한 것이냐”고 반문했다.
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최한솔 노무사는 “실제 배달노동자들은 플랫폼 업체소속으로 자영업자,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다. 하지만 플랫폼 업체들은 다수의 서비스 이용자와 연결만 해준다는 이유로 직접고용을 피하고 있다”며 “법이 현상을 못 따라가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노무사는 “이런 식의 노동자를 ‘플랫폼 노동자’라고 하는데 실제 많은 분야의 노동이 이런 형태로 분화하고 있지만 노동법은 (변화를)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며 “그사이 노동자들은 개미지옥 같은 시장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고 대안을 촉구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