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도심을 가로질러 흐르는 태화강은 1970, 80년대만 해도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죽음의 강’이었다. 강바닥은 암을 유발하는 카드뮴, 납 등 중금속 물질 범벅이었다. 공장 폐수로 수질이 나빠지면서 여름엔 파리와 모기가 들끓었고, 근처에 가지 못할 정도로 악취가 났다.
이런 태화강이 ‘국내 2호 국가정원’이 됐다. 산림청은 지난 7월 태화강 일원 태화교∼삼호교 구간의 ‘십리대숲’을 포함한 둔치 83만5452㎡를 국가정원으로 지정했다. 2015년 9월 전남 순천만 일원을 국가정원으로 처음 지정한 뒤 두 번째이다. 태화강 살리기 사업, 대숲 살리기 운동, 정원 박람회 등 울산시와 시민들이 끊임없이 해온 노력의 결과다.
◆대나무·무궁화 등 6개 주제로 만든 태화강 국가정원
태화강 국가정원은 생태와 대나무, 무궁화, 참여, 계절, 물 6개 주제로 모두 29개의 세부 정원으로 조성됐다.
가장 볼 만한 것은 ‘십리대숲’이다. 태화강을 따라 길이 4.3㎞, 폭 40∼50m 규모로 조성돼 있다. 전국 12대 생태관광지 중 하나다. 십리대숲 안에 들어서면 서늘한 대나무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나지막이 들리는 음악이 운치를 더한다. 매년 3월부터 10월까지는 백로 8000여마리가 찾아 1500여개의 둥지를 틀어 번식한다. 10월~3월에는 5만여마리의 떼까마귀가 찾아 군무를 펼친다. 멸종위기종인 솔개와 흰목 물떼새, 큰고니, 천연기념물인 새매, 황조롱이도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연간 158만명이 찾는 울산 최대 관광명소가 됐다. 울산시는 십리대숲을 확장해 내년 말까지 40㎞(100리) 구간에 대나무를 심는 백리대숲 조성사업을 추진 중이다. 자연생태 테마공원 5곳도 추가로 조성한다.
무궁화정원은 1만㎡ 규모이다. 무궁화 24종 2만4000여그루가 심겨 있다. 무궁화를 테마로 한 정원으로는 전국 최대 크기이다. 무궁화정원에는 울산 출신 세계적 무궁화 육종가인 심경구 박사가 육성한 무궁화들이 식재돼 있다. 학성, 제일중, 태화강, 굴화, 대현, 처용 등 울산의 이름을 딴 11종류와 송락, 삼천리, 새마을 등 특허품종 11종류, 산처녀, 백용 등 기타 품종 2종류 등이다. 새로운 재배법을 사용한 덕분에 9월까지 3개월간 꽃을 즐길 수 있다.
초화단지에서는 계절마다 다양한 꽃을 즐길 수 있다. 16만㎡로 단일 규모로는 전국에서 가장 넓다. 봄이면 꽃양귀비와 수레국화, 안개초, 작약 등 10여 종류 6000여만 송이의 꽃이 빨갛고, 노랗고, 하얀 자태를 제각각 뽐낸다. 1.5㎞의 초화 샛길도 마련돼 봄꽃 사이를 거닐 수도 있다. 여름엔 해바라기가 만개한다. 지금은 2만7000㎡ 규모로 국화가 만개해 있다.
◆연어, 수달, 삵 등이 찾는 생태하천 태화강
태화강에는 사계절 1급수 수준의 맑은 물이 흐른다. 1982년 태화강의 생물학적산소요구량(BOD)은 23.7㎎/ℓ였지만, 2006년 2.3㎎/ℓ, 2016년 1.2㎎/ℓ, 지난해 1.4㎎/ℓ로 수질이 꾸준히 개선됐다. 1급수의 BOD는 1.5㎎/ℓ이다. 40년 전 사라졌던 연어는 2003년부터 돌아오기 시작했다. 첫해 5마리이던 연어는 2007년 85마리, 2010년 716마리, 2014년 1827마리 등으로 계속 늘었다. 강원도 양양 남대천, 강릉 연곡천에 이어 전국 3위의 연어 회귀 하천이 됐다.
물이 맑아지자 황어, 은어뿐 아니라 천연기념물인 수달, 멸종위기종인 삵도 돌아왔다. 26년간 수질오염으로 채취가 금지됐던 바지락도 안정성을 인증받아 2013년부터 바지락 채취어업이 시작됐다.
태화강이 ‘생명의 강’으로 되살아난 건 오·폐수를 차단하는 하수처리장을 만들고 강바닥 오니 등을 걷어내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1997년과 1998년 울산항으로 유입되는 모래를 막기 위해 설치한 하천 내 방사보 양 끝을 일부 철거했다. 2005년부터는 자연생태 복원을 위한 ‘태화강 살리기 마스터플랜’을 추진했다. 하천 곳곳에 퇴적된 ‘모래톱’은 되도록 원형을 보존했다.
태화강이 생태하천으로 자리 잡자 2017년 64개 시민단체가 주축이 돼 ‘국가정원 지정을 위한 범시민추진위원회’가 꾸려졌다. 정원 지정을 위한 시민 서명운동에는 22만여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울산시는 동남권 제1의 정원도시로 정원산업의 메카로 성장하고, 더 나아가 해외 관광객이 즐겨 찾는 글로벌 에코마크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울산=이보람 기자 bora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