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한국을 수출관리 우대국인 ‘백색 국가’(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하는 경제 보복이 진행된 지 100일이 넘어가는 가운데, 정부와 민간이 속속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정부는 산·학·연과 함께 소재·부품·장비 국산화를 연구하는 ‘국가연구실’과 ‘국가연구시설’을 이르면 다음달 본격 가동할 예정이다. LG와 삼성 등 민간 기업 차원에서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를 시도한 결과물도 나오기 시작했다.
◆정부·산·학·연이 함께 국산화 연구하는 ‘소재·부품·장비 국가연구실·국가연구시설’, 28일까지 모집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오는 28일까지 ‘소재·부품·장비 국가연구실·국가연구시설 1차 지정’ 신청 대상자를 모집한다고 17일 밝혔다.
과기정통부·산업통상자원부·중소벤처기업부·특허청는 국가 주도로 산·학·연 연구개발 역량을 총동원하는 ‘3N+R(지역)’ 체계를 구축한다는 내용의 ‘재·부품·장비 연구개발 투자전략 및 혁신대책’을 지난 8월에 발표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 △핵심품목 기술 개발을 안정적으로 추진하고 필요시 긴급연구를 수행하는 ‘국가연구실’(N-LAB) △핵심 소재·부품의 상용화 개발을 위해 활용하는 주요 테스트베드 ‘국가연구시설’(N-Facility) △연구 개발 애로 해소와 국외 동향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협의체 ‘국가연구협의체’(N-TEAM)를 설립한다.
정부는 이중 국가연구실과 국가연구시설을 우선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과기정통부는 지난 16일부터 국가연구실과 국가연구시설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냈다.
공고에 따르면 국가연구실은 △소재·부품·장비분야 핵심기술에 대한 연구개발 △소재·부품·장비분야 국내외 기술동향 분석 및 산업계 협업 △그 밖에 과기정통부 장관이 인정하는 소재·부품·장비분야 연구개발 및 관련 사항을 맡는다. 국가연구시설은 △핵심소재·부품·장비 연구개발을 위한 테스트베드 △핵심소재·부품·장비 연구개발에 필요한 지원 △과기정통부 장관이 인정하는 테스트베드 및 연구개발 지원에 관한 사항을 추진한다.
한번 선정된 국가연구실과 국가연구시설은 관련 분야 연구개발 통해 기술 자립화가 이뤄지거나 더 이상 연구개발이 필요하지 않은 수준이라고 평가될 때까지 지정이 해제되지 않는다. 다만 과기정통부 평가 시 역량이 현저히 낮다고 평가되는 경우 지정이 무효화될 수 있다.
공고 이후 이달까지 서류·현장평가가 진행되며, 이르면 다음달에 1차 지정이 완료된다.
◆LG·삼성·SK, 디스플레이·반도체 공정 핵심 소재 국산화 성공
LG와 삼성은 최근 디스플레이와 반도체 공정의 핵심 소재인 고순도 불화수소의 국산화에 성공했다.
18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LG디스플레이는 일본의 반도체 소재·부품 수출 규제 두 달여 만인 지난달 ‘고순도 액체 불화수소’(불산액)의 국산화에 성공했고, 이달부터 모든 제조 공정에 일본산 불화수소를 국산으로 100% 대체했다.
LG디스플레이 측은 “양산라인의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 생산에 사용되는 고순도 불화수소를 국산화했다”며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한 공급 리스크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또한 국내 협력업체와 동반 성장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삼성디스플레이 역시 국산 제품의 액체 불화수소의 테스트는 이미 마쳤고, 조만간 생산라인에 투입할 예정이다.
여기에 삼성전자는 원익머트리얼즈와 손잡고 ‘고순도 기체 불화수소’(에칭가스)의 국산화도 추진한다. 원익머트리얼즈는 반도체·디스플레이용 특수가스 등을 제조·판매하는 원익그룹의 계열회사다. SK하이닉스도 SK머티리얼즈와 함께 일본산 고순도 기체 불화수소 대체를 위해 테스트 중이며, 내년 공정에 적용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불화수소는 반도체 세정 및 식각 공정에 사용되거나 일부 첨가제를 섞어 실리콘 산화막 두께를 줄이는 데 이용된다. 무수불산을 정제해 액체 혹은 기체 형태로 제조한다. 일본 정부는 지난 7월 디스플레이 제조 공정에 쓰이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반도체 제조 과정에 사용되는 포토레지스트(PR), 불화수소(액체·기체) 등 3개 품목의 한국 수출을 개별수출허가로 전환해 수출을 제한하고 있다.
이복진 기자 bo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