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미의영화산책] 나와 다른 너

최근 ‘포용적 복지국가’, ‘포용적 경제’라는 말이 화두가 되고 있다. 자본주의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이 빈부격차이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회는 경제가 발전하더라도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 플라톤은 저서 ‘국가’에서 재산 평가에 근거해 부유한 자들이 통치하고 가난한 사람은 소외되는 정치체계인 ‘과두제’를 비판한 바 있다.

제76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영화 ‘조커’(감독 토드 필립스)는 놀림감이 돼 집단 구타로 온 몸이 멍드는 등 무시당하며 살아가던 사회적 약자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이 조커 분장을 하고 살인자로 변해가는 과정을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마블 코믹스 캐릭터인 슈퍼 히어로를 괴롭히는 슈퍼 빌런은 빈부격차와 사회적 부조리가 빚어내는 병폐에서 비롯될 수도 있는 것이다. 10월 북·미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던 이 영화는 현재 한국에서 400만명이 넘었고, 앞으로도 흥행가도를 달리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대체로 국제영화제 그랑프리를 받은 해외영화가 국내에서 흥행하지 못했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의외이다. 어떤 점이 이 영화의 매력인가.



각본까지 직접 쓴 필립스 감독이 오락만화 캐릭터인 악한 조커를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인물로 살아있게 만들었다는 점이 클 것이다. 만화에서 현실로 나왔다는 점에서 ‘다크 나이트’에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재현한 조커에 기반한 것이기도 하지만, 영화 ‘조커’에서는 인물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사회비판적 요소와 맞물리며 설득력을 더해 재창조됐다. 피닉스의 혼신의 연기도 한몫했다. 불의한 세계에 대한 분노가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정신병적 병력을 지닌 사람이 돌변하는 순간을 포착한 신들린 연기는 소름이 끼칠 정도다.

상상의 도시 고담시가 ‘디스토피아’(이상향을 뜻하는 유토피아의 반대말)로 설정된 것이기는 하지만, 사회에 대한 분노로 민중이 조커 가면을 쓰고 폭도로 변해가는 장면은 사회적 약자 조커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불합리한 사회에 대한 집단적 저항의 의미가 영화에 휘몰아치며 포용적 복지국가가 되지 못한 불행한 결과를 경고한다. 경제발전의 화려한 앞 얼굴에 가려진 뒤편의 그림자까지 배려하지 못한다면 그 화살은 언제 부메랑이 될지도 모른다.

황영미 숙명여대 교수·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