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지키다 사라진 돌부처를 찾습니다 [S 스토리]

훼손·절도 '비지정문화재' 관리 사각 / 망가지고… 도둑 맞고… 비지정문화재의 수난 / 불상 실종사건... 사라진 문화재를 찾아라 / 머리 잘리고… 시멘트로 덧칠된 불상 / 이름 없는 불탑은 원래 위치도 몰라 / 선사∼근현대까지 문화재 수십 만점 / 비지정문화재 이유로 보존·관리 안 돼 / 지자체 전문 인력·관리 여력 역부족 / 시·도 지정문화재 승격 꺼릴 수밖에 / 문화재청 문화자원 발굴 첫 전수조사 / 관리 주체·지정 범위까지 갈 길 멀어 / 문화재청 전수조사 시작은 하지만… / 문화재유적분포지도 바탕으로 대상 정해 / 거리 오차 기본… 엉뚱한 위치오류도 많아

#1. 경북 봉화군 소천리의 주민들은 마을의 절터를 오랫동안 지키고 있던 불상이 사라진 후 새로 불상을 조성했다. ‘실종’된 불상은 긴 세월의 풍파를 겪으며 머리마저 없어질 정도로 낡았으나 마을의 수호신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1999년쯤 불상이 없어지고 “젊은 사람들이 죽는 흉사가 이어졌다”는 소문이 돌았으니 말이다. 주민들은 새 불상을 옛 불상이 앉았던 대좌 위에 모셨다. 한눈에도 시간의 큰 간극을 확인할 수 있는 묘한 조합은 어딘가를 정처없이 떠돌고 있을 부처님을 위로하고 주민들이 스스로 마음을 다독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일 터다. 불교문화재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소천리의 절터는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후기까지 운영됐던 것으로 보인다.

 

#2. 충남 서산시 용현리에는 고려 중기∼조선 후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조그만 절터가 있다. 인근에는 비로자나불과 석등재가 한 점씩 나란히 서 있었다. 비로자나불이 도난당한 건 2005년 3월. 그 이후로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비로자나불은 ‘백제의 미소’ 서산마애삼존불과 이웃해 있었기 때문에 그 신세가 더 처량하게 여겨진다. 국보 84호로 지정돼 애지중지 보살핌을 받는 서산마애삼존불은 도난이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혹여 실금 하나만 생겨도 누군가에겐 가슴이 무너질 일이다.

긴 세월에 깎이고 부서졌으나 그 시간 동안 수많은 중생들의 염원을 들어주고 아픔을 보듬었을 이 부처님들은 지금 어디를 떠돌고 있을까. 소천리, 용현리 불상만의 사정이 아니다. 행방을 알 수 없는, 혹은 방치되다시피 해 훼손이 심각한 불상들이 적지 않다. 비슷한 사정의 탑, 전적, 건축물 등이 부지기수다. 공공의 박물관, 연구시설 등에 소장된 경우라면 그나마 형편이 괜찮다. 하지만 외부에 노출되거나 개인의 소장품이라면 종류, 상태, 규모 등 기초정보조차 불분명해 적절한 보호·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볼품없는 옛날 물건일 뿐 아니냐, 무시하지 마시라. 엄연히 “우리 겨레의 삶의 예지와 숨결이 깃들어 있는 소중한 보배이자 인류 문화의 자산”(문화유산헌장)의 일부다. 이제는 “지역 특성을 살리는 공동체 중심의 문화유산”으로 평가도 받는다. 지금의 문화재 관련 법률, 정책상 보호, 관리의 대상에서 배제되다시피 한 ‘비지정문화재’인지라 감수해야 하는 설움과 차별이 과할 뿐이다.

◆비지정, 문화재 보호·관리의 사각지대

 

비지정문화재의 열악한 사정이야 새로울 것도 없다. 알 만한 사람들에겐 오래된 걱정거리 중의 하나였다. 불교문화재연구소가 2010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사지(절터) 및 사지소재문화재 조사의 결과를 보자.

18일 불교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2016년을 기준으로 파악된 1만7248건의 소재문화재 중 93.3%인 1만6901건이 비지정이다. 부실한 보호, 관리 실태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사례인 원위치불명 및 망실의 사례에서는 전체 2648건 중 2592건을 차지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라진 것들 중에는 불상과 불탑이 많다. 은밀한 거래를 통해 돈을 만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절도범들의 타깃이 되고 있는 것이다. 원래의 위치에서 벗어난 것들 중에도 비지정문화재가 대부분이다.

 

훼손을 막기 위한 선제적 조치, 혹은 이미 발생한 훼손에 대한 적절한 보존 처리 등은 문화재 관리의 기본이지만 비지정문화재는 이마저도 기대하기 어렵다. 농업 자재를 임의로 쌓아 두어 큰 하중을 받고 있는 석탑, 건물의 담장에 방치된 불상, 파손된 안면부에 시멘트를 발라 흉측한 얼굴을 가지게 된 불상 등의 사례가 확인된 바 있다.

 

비지정문화재 상당수의 관리주체인 지방자치단체의 무관심, 무지, 무능력은 이제 하나 마나 한 소리가 될 정도로 반복해서 지적된 사안이다. 적절한 예산, 인력을 갖춘 곳은 드물고, 기초자치단체 228곳 중 144곳만이 관련 조례를 제정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보호, 관리의 필요성이 큰 것임에도 지정문화재로 올리는 것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문화재에 특정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적어도 책임은 물어야 재발을 막을 수 있겠으나 사실상 근거가 없다. 문제가 생기는 걸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예산을 들여 보호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 문화재 전문가는 “우리나라의 문화재 관련 법률, 정책은 철저하게 지정문화재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비지정문화재 보호를 위해 예산을 들이기가 힘들고,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책임을 묻는 것도 불가능하다”며 “가치가 있다고 판단이 되면 지정을 해서 ‘신분’을 바꾸어야 보호, 관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첫 시도 비지정 전수조사, 정책의 전환점될까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으나 지난 6월 문화재청은 개청 20주년을 맞아 ‘미래비전 정책선포식’을 하며 6대 핵심전략을 발표했고, 1순위로 내세운 것이 ‘문화재 보존체계의 패러다임 전환’이었다. “그간의 지정문화재 중심 보호방식이 비지정문화재의 보호 소홀을 초래한 단점이 있었다”며 “문화유산의 총체적 보호에 걸맞은 새로운 보호방식을 도입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그리고 얼마 전 공개된 정부 예산안에 ‘역사문화 자원 발굴 및 보호’라는 이름으로 252억원(2020∼2023년)을 포함시켰다. 문화재청은 “전 국토에 산재한 역사문화 자원을 발굴해 총체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며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 수십 만점 이상의 역사문화 자원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 파악하고 있는 것은 1만8215건에 불과하다”고 비지정문화재 전수조사 계획을 밝혔다.

문화재청이 밝힌 것처럼 비지정문화재를 ‘역사문화 자원’이란 관점에서 접근할 때 실례로 들 수 있는 것이 ‘지정조격’이다. 2003년 경주 한 종가의 고문서 뭉치에서 발견된 지정조격은 중국 원나라의 최후 법전으로, 우리가 가진 것이 세계 유일본이다. 전문가들의 눈에 띄어 가치가 확인되기 전까지는 종이부스러기 정도의 취급을 받았다. 비록 우리가 생산한 문화재는 아니지만 발견의 과정이 흥미롭고, 한국을 찾은 몽골의 전 대통령이 이것을 보기 위해 소장처인 한국학중앙연구원을 찾는 등 여러 가지 스토리를 낳고 있다. 중국과 관련된 한국사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역사 자원으로서 활용 가능성은 크다.

 

비지정문화재 전수조사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의 개념, 범위 등에 대한 기초적인 정리가 필요하다는 시각이 있다. 문화재청의 추정대로라면 수십 만점에 달하는 비지정문화재를 모두 잠재적인 보호, 관리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것이냐는 의문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강원도 원주시역사박물관 박종수 관장은 “비지정문화재에 대한 개념 정리가 필요하다”며 “지자체별로 관련 조사가 진행된 게 있지만 지정문화재 외 모두를 비지정문화재로 할지, 그중 일부만으로 제한할지 등에 대한 기준이 없다”고 지적했다.

 

불교문화재연구소 임석규 실장은 “역사적·예술적 가치를 가진 비지정문화재를 발굴해 지정문화재로 승격시키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며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할 정도의 비지정문화재는 전체의 10%도 되지 않을 것이다. 나머지는 민간단체나 사찰 등에서 관리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1999년쯤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경북 봉화 소천리사지 불상의 원래 모습.

◆문화재 있대서 찾아갔는데… ‘이 산이 아니었더라’ 

 

비지정문화재 일제조사는 얼핏 단순해 보이지만 까다롭고, 지난한 작업이라고 경험 있는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작업은 동국여지승람, 범우고 등과 같은 오래된 사료나 문화유적분포지도 등과 같은 기존의 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조사 대상을 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기초 자료가 풍부하고, 정확하다면야 더할 나위 없겠지만 사정이 그렇지 않다. 최근에 만들어진 문화유적분포지도만 해도 표시된 좌표가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 “수십 미터 정도의 오차가 아니라 문화재가 위치한 산봉우리를 잘못 기록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관계자들의 비협조가 조사를 어렵게 하기도 한다. 일례로 비지정문화재가 위치한 곳의 땅주인이 조사자를 쫓아내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그들의 입장에선 조사 후 지정이라도 되면 개발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조사를 위해 문화재를 보여달라고 요청하면 무턱대고 경계심을 드러내는 소장자들도 있다. 물론 소장자가 끝내 조사를 거부하면 강제할 방법이 없다. 단순한 위치 파악을 넘어 해당 문화재의 연원, 가치 등을 구체화할 정보를 파악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다. 불교문화재연구소 정지연 팀장은 “현지 조사에서 문화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기억하는 분들이 많으면 알지 못했던 정보를 듣게 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며 “개발로 인해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서는 이런 기억을 가진 분들이 없어 문화재의 조성 시대나 사지 이름 등을 추론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한 문화재 전문가는 “대학 도서관 한 군데만 들여다봐도 정리되지 않은 고서들이 수만 권 이상 있을 수 있다”며 “이런 걸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공유하는 작업은 쉬울 수는 없다”고 말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