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유해봉환 협의 공문 반년간 日에 안 보내… 무책임한 외교부

정부 안일한 대응 비판 목소리/ 강제동원 피해자 70% 日 끌려가/ 행안부, 공문 만들어 외교부 전달/ 주일대사관, 日 외무성에 미발송/ 6개월 동안 실무협의 못 이뤄져/ 외교부 “日측에 구두로 전달한 듯”/ 일각선 “反日 정부기조 눈치 본 것”

정부가 해외에 흩어진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자 유해봉환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가운데 외교부가 관련 논의를 위한 실무협의 요청 공문을 일본 정부에 전달하지 않은 것으로 20일 드러났다. 강제동원 피해자 중 70%가 일본 본토에 끌려가서 가장 많은 유해가 일본에 남아 있지만 관련 실무협의가 6개월가량이나 이뤄지지 못해 외교부가 안일하게 대응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자유한국당 김재경 의원과 정부·주한 일본대사관 등에 따르면 유해봉환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안전부는 지난 4월25일 외교부로 ‘2019년 한·일 간 유해봉환 관련 협의 개최 요청’ 공문을 보냈다. 행안부는 △신원이 확인된 강제동원 노무자 유해 중 우선 봉환대상 11위 봉환 방안 △일본 오키나와 모토부 소재 조선인 유해 2위 발굴·봉환 방안 △키리바시공화국 타라와섬 등 태평양전쟁 격전지 내 아시아계 유해 발굴 상호 협력 방안 등 구체적인 안건 논의를 위해 일본 외무성과 후생노동성에 회의 개최를 제안했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체계적인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희생자 유해봉환을 위해 행안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에 강제동원희생자유해봉환과를 만들었다. 예산과 인력을 보강해 러시아 사할린뿐 아니라 중국 하이난, 일본 본토, 태평양전쟁 격전지 등으로 유해봉환 대상 지역을 넓히기 위함이었다. 특히 정부에서 2015년 파악한 강제동원 피해자 21만6992명 중 70.1%(15만2195명)가 일본 본토로 끌려간 만큼 보다 많은 유해봉환을 위해서는 일본 정부의 협조가 필수이다. 인도주의 관점에서 유해봉환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행안부는 우선 조선인으로 신원이 확인된 유해부터 한·일 정부가 협력해 유해를 봉환하자는 구상을 전달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행안부가 외교부로 전달한 문서가 주일대사관에서 일본 정부로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서 협의체 회의가 6개월째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행안부로부터 공문을 접수한 외교부는 지난 5월 초 해당 문건을 주일대사관으로 보냈지만 일본 정부로 전달됐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말 한 언론에서 ‘일본 정부가 유해봉환 관련 논의를 위한 한국 정부의 공식 요청을 무시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공식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며 해당 보도에 대해 정정보도를 요청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유해봉환 관련해 주일대사관과 일본 정부의 공문 수발신 내역을 제출하라’는 김 의원의 질의에 대해 “일본 외무성으로 해당 공문을 발송한 기록을 찾지 못했다. 구두로 일본 측 실무자에게 전달한 거 같다”며 “한·일 국장급 협의를 포함한 다양한 경로로 유해봉환 관련한 논의를 계속 이어오고 있다”고 해명했다. 행안부는 지난 4월에 보낸 공문이 일본 정부에 전달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지, 지난 11일 실무협의 재요청 공문을 외교부로 보냈다.

김 의원은 “지난여름 한·일 갈등 국면에서 당시 민정수석, 민주연구원장 같은 정권 실세들이 반일감정을 고취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일대사관이 눈치 보느라 공문을 전달하지 못하고 묵혀두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며 “강제동원 유해봉환 문제는 반일감정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외교부도 책임감을 가지고 진행해 나가야 하는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이창훈 기자 corazo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