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는 검찰 개혁의 취지에 반하는 것이며, ‘제2의 검찰’이 될 것이다.”
요즘 문재인정부 청와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찰떡궁합’이 되어 드라이브를 거는 공수처 설치에 대해 국내 헌법학계의 권위있는 학자가 내놓은 반응이다. 한마디로 공수처 신설은 개혁이 아닌 ‘개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공수처장 임명하면 검찰과 뭐가 다른가"
헌법학자인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교수는 2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검찰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했다.
이번 토론회는 시민단체 바른사회운동연합과 싱크탱크 한반도선진화재단이 공동으로 주최했다.
장 교수는 먼저 “공수처 도입은 검찰의 정치적 편향성을 해소하기 위해 새로운 기관을 두자는 것인데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한다면 결국 대통령 영향력 아래에 있게 된다”고 지적했다. 공수처장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한 기존 법안 내용대로라면 공수처도 과거의 정치검찰과 마찬가지로 ‘권력의 시녀’로 전락할 것이란 뜻이다.
그는 “이는 검찰 개혁의 취지에 반하는 것이며 공수처는 대통령의 인사권으로 인해 제2의 검찰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현재 국회에 계류된 공수처 법안은 공수처가 매우 많은 사건을 담당하게 해놓았으면서 규모는 고작 검사 25명 이내로 한정하고 있다. 그나마 25명의 절반가량은 검찰청에서 제대로 수사 기법을 배운 검사가 아닌 일반 법조인 중에서 뽑도록 했다. 수사 실무를 잘 모르는 아마추어 법률가나 실력보다 특정 이념만 앞세우는 변호사들이 공수처를 장악할 길이 활짝 열린 셈이다.
장 교수는 “최근 중요 사건 하나에도 검사들이 50명 이상 투입되는 것과 비교해 이런 규모의 공수처가 제 기능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며 “공수처가 인력 부족으로 부실한 수사가 많아질 우려가 있다”고 우려했다.
◆좁은 한국에 수사기관 3개 난립… "아비규환 될 것"
공수처에 대한 법학계와 법조계의 부정적 시선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지금도 한 사건을 두고서 검찰과 경찰이 으르렁거리며 다투기 일쑤인데 여기에 공수처 같은 제3의 수사기관까지 새로 생겨나면 서로 물어뜯고 싸우는 수사기관들로 인해 한국 사회 전체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될 것이란 견해가 많다.
실제로 검경과 별도의 부패전담 수사기관을 두고 있는 외국은 수사기관들끼리 단순한 갈등을 넘어 정면충돌까지 빚은 사례가 허다하다. 인도네시아는 부패근절위원회(KPK)라는 부패전담 수사기관이 있다. 2009년 KPK가 경찰 고위간부에 대한 수사 계획을 밝히자 경찰은 KPK 위원장을 살인교사, 부위원장을 직권남용과 뇌물수수 혐의로 전격 체포했다. 결국 KPK는 한동안 제대로 된 업무 처리가 불가능해졌다.
2012년 KPK가 경찰 고위간부의 뇌물수수 단서를 잡고 해당 경찰서를 압수수색하자 경찰이 KPK 팀장급 간부의 8년 전 비위 의혹을 들어 수사하는 등 반격에 나섰다. 경찰은 보복 조치 일환으로 KPK에서 파견근무를 하던 경찰관을 전부 복귀시켜 KPK의 업무를 마비시켰다.
2015년 KPK가 신임 경찰청장 후보자를 비리 수사 대상으로 지목하자 경찰은 되레 KPK 부위원장을 위증 혐의로 체포했다. 결국 대통령이 나서 KPK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교체했다.
◆개혁 핵심은 신설 아닌 '기존 기관 권력 줄이는 것'
홍콩의 염정공서(廉政公署·ICAC) 역시 검경과 별개의 독자적 수사권을 갖춘 기관으로 부패범죄나 공직자 등의 권력 남용을 주로 담당한다. 그런데 2005년 ICAC 소속 수사관이 홍콩의 한 고급 호텔 레스토랑 귀빈실에 도청장치와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사건이 벌어졌다.
같은 해 또 다른 ICAC 수사관은 뇌물수수 현장을 잡겠다며 형사사건 의뢰인과 변호인의 미팅 현장을 도청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한 전직 검사는 “수사 단서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 조직 생존을 위한 가시적 성과 도출에만 급급하다 보니 생겨난 부작용”이라고 풀이했다.
공수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기류는 여권 안에서도 감지된다. 민주당 금태섭 의원이 “(권력기관 개혁은) 기존의 권력기관의 권한과 힘을 축소하고 제한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며 “또 다른 특별권력기관을 만드는 것은 시대적 과제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이 대표적이다.
금 의원에 따르면 일정한 직급 이상의 고위 공직자만 대상으로 삼아 따로 수사 및 기소하는 기관은 세계 어느 국가에도 없다. 이른바 ‘글로벌 스탠다드’와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는 “사정기관인 공수처가 일단 설치되면 악용될 위험성이 매우 크다”며 “공수처라는 권력기관이 하나 더 생기면 이제 (청와대가) 양손에 검찰과 공수처를 들고 전횡을 일삼을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