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지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문제로 논란에 휩싸여 있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법안으로 공수처법안의 처리 일정이 다가오면서 여야는 극렬하게 대립하고 있고, 국민여론도 찬반으로 나뉘어 있다. 이렇게 공수처법안이 국민의 갈등과 반목을 유발한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아무리 공수처법안이 중요하다고 해도 사회가 혼란에 빠지고 정치권이 사활을 걸어야 할 정도로 중요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공수처는 1996년 검찰개혁을 위한 방법으로 처음 거론된 후 20여년이 흘렀다. 그동안 정치권력은 검찰을 수시로 이용했고, 검찰도 정경유착으로 인한 고위층의 부정부패에 대해 적극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이런 검찰의 모습에서 검찰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커졌고, 고위층의 부패 수사를 위해서는 검찰 이외의 별도기구가 필요하다는 견해가 지지를 얻기도 했다.
공수처 도입에 관한 호의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검찰개혁을 위한 방법이란 태생적 한계를 공수처법안은 가지고 있었다. 2001년에는 공직자의 부패방지를 위해 부패방지법이 제정되고 부패방지위원회가 신설됐다. 2014년에는 검찰권을 통제 또는 견제하기 위해 상설 특별검사제도와 특별감찰관제도가 법제화됐다. 나아가 2015년에는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김영란법)이 제정되면서 대가성 유무에 상관없이 일정 금액 이상의 금품수수를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외에도 공직자윤리법은 공무원의 비리에 대해 책임을 묻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공무원의 부패와 비리에 대해 법과 제도가 구축되면서 고위공직자의 부패와 비리에 대한 대응 역시 과거와 달리 상당히 강화됐다.
대통령, 국회의원, 장·차관, 판·검사 등은 우리나라를 움직이는 고위공직자이다. 그들의 부패와 비리가 국가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다뤄야 할 문제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을 보면 고위공직자의 부패·비리수사를 위해 특별기구를 설치한 예가 없다. 이 국가들이 고위공직자의 부패·비리가 없어서 특별기구를 설치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고위공직자만을 대상으로 사정기관을 따로 설치하는 것은 헌법상 평등원칙에 반하기 때문이다.
물론 별도의 반부패기구를 운영하고 있는 국가로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대만, 탄자니아 등이 있다. 그런데 이들 국가도 수사권만 주고 기소권은 부여하지 않으며 기소권까지 부여한 국가는 탄자니아 정도다. 또한 이 국가들이 별도의 기구를 운영하는 것은 검찰권이 약한 데도 그 원인이 있다.
한마디로 공수처 설치는 검찰개혁의 대안이 될 수 없다. 검찰개혁에서 항상 거론되는 것이 수사와 기소의 분리이다. 그래서 고위공직자를 대상으로 하는 공수처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는 것은 검찰개혁에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고위공직자를 대상으로 하는 또 다른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 분점이라는 이름으로 신설되는 것에 불과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검찰의 권한을 오·남용, 악용하는 것보다 고위공직자의 범죄를 대상으로 하는 공수처의 권한을 오·남용, 악용하는 경우 그 위험은 더욱 클 것이다.
이제 초심으로 돌아가 공수처 설치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검찰개혁과 별개로 고위공직자의 부패·비리를 근원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공수처가 꼭 필요하다면, 대통령이나 국회가 관여할 수 없도록 공수처의 독립성을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 그렇지만 검찰권을 나눠 공수처와 같은 새로운 권력기관을 신설하는 것은 권력기관의 권한 총량을 늘리는 것이기에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권력기관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만든 것을 폐지하는 것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불가능하다.
우리 정치 현실에서 공수처의 신설은 또 다른 정치적 권력기관을 만드는 것이 될 수 있다. 모든 국가기관은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그렇다면 공수처법안으로 정치적 이해득실만 따지면서 갈등과 분열을 일으킬 것이 아니라 시간을 갖고 국민을 위한 기관이 될 수 있는지 꼼꼼하게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