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사건의 경찰 조사가 시작됐다. 성폭행 피해자와의 첫 대면조사. 경찰 수사관 앞에는 조사실이라면 흔히 연상되는 기록장치가 없다. 경찰과 피해자의 대화가 자동으로 문자로 기록되는 인공지능(AI) 음성인식 단말기가 조사실 바깥에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경찰은 피해자 진술을 일일이 확인하기 위해 압박 질문을 할 필요 없이 ‘당시 상황을 편안하게 말해보세요’라는 식의 개방형 질문을 던질 수 있었고, 피해자도 경찰을 의식하지 않고 차분하게 당시 상황을 진술했다.
이런 장면은 현재로써는 가상 사례지만 내년부터 일부 경찰서에서 본격 실시될 여성대상 범죄 수사의 모습이다. 현재 서울 구로서 등 5곳에서 시범운영을 준비하고 있는 이 단말기는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막고, 성폭력 피해자 초기 진술을 공정하게 확보하는 데 있어 결정적 기여를 할 것으로 예측된다. 경찰 수사관의 선입견이 배제되고, 피해자의 자연스러운 진술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년 50개 경찰서에 확대 보급될 이 단말기는 향후 유사 판례 등을 함께 보여줘 경찰 수사의 객관성을 높일 예정이다.
이 단말기는 경찰청이 22일 인천 송도 컨벤시아에서 개최한 ‘제1회 국제치안산업박람회’에서 공개한 기술 중 하나다. 21일부터 사흘 동안 개최되는 이번 박람회에서는 경찰 개인장비관 등 6개 전시관이 운영돼 140개 기업 및 기관이 치안 및 경찰 수사, 교통과 관련한 최첨단 기술을 공개했다.
이번 박람회에서는 ‘한국형 전자충격기’도 일반에 공개됐다. 2005년 도입된 기존 전자충격기는 한 번 발사 후 전극침이 들어있는 카트리지를 교체해야 해 급박한 상황에서 빈틈을 자주 노출했다. 하지만 이번에 개발된 한국형 전자충격기는 재장전 없이 3회 연속 사용이 가능하고, 2개의 레이저가 조준돼 명중률을 높였다. 또 방아쇠를 놓으면 전자충격이 중지되는 등 안전성이 강화된 데다 예전 장비 대비 40% 싼값에 보급이 가능해졌다. 새 전자충격기는 오는 12월부터 서울 등 14곳에서 시범 도입된다.
아울러 출입구를 파괴하고 진압할 때 사용되는 도어 브레이커, 범죄도구 등을 보여줄 때 0.3초 동안 나타나는 특정 뇌파를 감지해 사건 해결에 기여하는 뇌지문(뇌파) 감지기, 버튼을 한 번만 누르면 펴지는 접이식 방패도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경찰 관계자는 “아랍에미리트 경찰청장이 접이식 방패를 구매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는 등 해외에서도 우리 기술을 구매하려는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며 “향후 박람회 기간을 연장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등 시민들에게 우리 치안산업을 더 많이 보여줄 계획이다”고 말했다.
글·사진=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