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금융기구에서 금융 자체에 접근하는 차원의 포용적 금융을 추구한다면, 우리나라는 이를 넘어 경제적 자립을 위해 필요한 대출을 받을 때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단계입니다.”
이계문 서민금융진흥원장 겸 신용회복위원장은 23일 세계금융포럼 기조연설을 통해 “세계은행(WB)과 아시아개발은행(ADB) 등은 금융 자체에 접근을 못했던 사람에게 송금, 저축 등을 할 수 있도록 해주자는 관점을 갖고 있지만 우리 같은 선진국에서는 계좌를 대부분 갖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전 세계 15세 이상 인구의 31%는 금융회사에 자신의 계좌가 없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계좌 보유율은 95%로, 영국 등 금융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반면 취약계층의 대출 접근성은 여전히 열악하다. 소득 하위 40%의 금융권 대출비중이 미국은 23%이지만 우리나라는 12%에 불과하다. 20% 이상 고금리대출을 받은 사람은 266만8000명에 이른다. 신용 6등급 이하로 떨어지면 제1금융권에서 대출을 해주지 않아 고금리의 저축은행, 대부업체, 카드사 등을 이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신용도가 낮은 어려운 분일수록 고금리대출을 많이 이용하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시장의 실패라고 할 수 있다”며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카드론 등을 쓰는 사람이 제대로 갚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포용적 금융정책은 저신용층 등을 대상으로 맞춤형 금융을 지원하고 취약채무자를 보호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2002년 가계 신용카드 대출 무더기 부실사태를 겪으며 수많은 사람이 깊은 빚의 늪에 휘말렸고, 신용불량자(현 금융채무불이행자)가 300만명까지 양산되면서 같은 해 신용회복위원회가 출범했다. 법정 최고금리 인하와 서민금융 정책자금 공급 등의 취약계층 빚 부담 완화 정책도 계속되고 있다.
이 원장은 “세종대왕 시절 대부이자를 월 3%, 연 10%로 제한하고 영조 시절에는 쌀을 빌렸을 때 이자총액이 50%를 넘기지 못하도록 하는 등 조선시대에도 지금보다 강한 이자제한법이 있었다”면서 “지난해 법정 최고금리를 24%로 내렸지만 아직도 높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전국 47곳에 있는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가 저신용자들을 돕기 위해 진행해온 상담사례를 소개해 관심을 끌었다. 한 청각장애인은 임금이 체불되자 카드론과 대부업체에서 생활비를 빌려 쓰다가 연체가 됐다. 그는 센터 도움을 받아 기초생활수급자 지정 신청과 무주택자 주거급여자 등록을 할 수 있었다. 횟집을 운영하다가 칼질을 잘못해 손가락을 쓸 수 없게 됐는데도 자녀 병원비가 없어 급전을 빌린 사례도 소개됐다. 이처럼 성실하게 살던 사람도 갑자기 돈이 필요하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기 힘들어 높은 이자 등의 불리한 조건으로 빌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 원장은 “빚 문제로 일가족이 목숨을 끊는 등 극단적 선택을 하는 분까지 있지만 사실 상담만 받아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많다”며 “채무나 빚도 결국 병과 같아서, 병원 가면 낫듯 빚도 전문가와 상담하면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앞으로의 과제로 이 원장은 서민금융 프라이빗뱅커(PB)로서의 역할 강화와 지역 유관기관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꼽았다.
이 원장은 “자금을 공급하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고 사전적 금융교육과 사후 컨설팅까지 원스톱지원서비스를 해야 도움받은 분도 경제적으로 회복속도가 빨라진다”며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와 서민금융회사, 미소금융재단, 근로복지공단, 신용보증재단, 지역 자활센터, 금융복지 상담센터가 연계한 공공·민간 협업의 지역협의체 모델도 추진 과제”라고 밝혔다.
백소용 기자 swini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