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가택연금’ MB, ‘오른팔’ 원세훈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36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원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이명박 전 대통령(MB)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뇌물 의혹에 대해 비공개로 증언할 예정이다. 원 전 원장은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일 때 제1행정부시장을 맡아 측근으로 일했고, MB정부 출범 후 행정안전부장관 등을 거쳐 오른팔로 불린 바 있다. 앞서 지난 3월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률위반(뇌물) 등 혐의로 기소된 이 전 대통령의 보석 허가를 결정하면서 엄격한 조건을 달았다. 이 전 대통령의 석방 후 주거지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으로 제한하고, 배우자 및 직계혈족과 그 배우자, 변호인만 만날 수 있도록 했다. 이 외의 인물과는 접견과 이메일  등 통신도 금지해 MB 측에선 사실상 가택연금 상태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은 2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이순형 부장판사) 심리로 열리는 원 전 원장의 속행 공판에 나오기로 했다. 이 전 대통령 측 강훈 변호사는 “증인으로 채택돼 출석할 예정이다. 비공개 증언이라 내용이 알려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원 전 원장은 2010∼2011년 이 전 대통령에게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을 통해 2억원,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을 통해 10만 달러(약 1억500만원)의 특수활동비를 전달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 혐의는 이 전 대통령에게도 그대로 적용됐다.

 

앞서 이 전 대통령의 1심은 2억원의 특활비에 대해서는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혐의가, 10만 달러에 대해서는 뇌물 혐의가 인정된다며 유죄로 판결했다. 반면 이 전 대통령과 원 전 원장 측은 이러한 혐의를 일관되게 부인해 왔다.

 

2억원은 돈을 전달하기로 한 지시 등 공모행위 자체가 없었고, 10만 달러의 경우 자금 용도에 부합하는 대북관계 업무에 사용했다는 것이 이 전 대통령 측의 주장이다.

 

원 전 원장도 올해 3월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에 증인으로 출석해 “대통령이 돈 이야기를 하시겠느냐”며 이 전 대통령의 항변에 부합하는 증언을 했다.

 

이 전 대통령도 이날 법정에 나와 같은 취지로 당시 상황을 해명할 것으로 보인다. 증언이 비공개로 진행되는 만큼 10만 달러의 용처와 관련된 설명도 할 전망이다.

 

원 전 원장의 재판부는 지난달 30일에도 이 전 대통령을 증인으로 소환했으나, 당시에는 이 전 대통령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고 나오지 않았다.

 

강 변호사는 “경호 문제 등이 있어 다음 기일에 출석하겠다고 연기 신청을 했던 것”이라며 “이후 경호처와 재판부가 일반인과 다른 출석 통로 등을 사용할 수 있도록 협의했다”고 설명했다.

 

이 전 대통령에 앞서 전직 대통령이 타인의 형사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사례는 고(故) 최규하 전 대통령이 있다.

 

최 전 대통령은 1996년 11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항소심에 구인장까지 발부받은 끝에 출석했으나 일체의 증언을 거부했다.

 

최근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 혐의 1·2심에 모두 증인으로 채택됐으나 출석을 거부해 증언이 무산된 바 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