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늘리고 우범지대 리모델링… 여성들이 돌아왔다 [세계는 지금]

日 도쿄 도시마구 인구소멸 위기 탈출 / 2014년 도쿄 23구중 유일 소멸 경고장 / 급감하는 20∼30대 여성 유입 정책 마련 / 시설비·임차료 지원, 보육원 신설 유도 / 보육사 주택임차료까지 도와 인력 확보 / 공원·공용화장실·지하도 등 쾌적화 추진 / 여성·어린이친화 도시환경 조성 팔 걷어 / 2045년 구 2030대 여성 4만276명 추정 / 당초 민간 분석보다 63% 더 많이 나와
지난달 10일 도쿄 도시마구 미나미이케부쿠로에서 어린이들이 신나게 뛰어놀고 있다. 과거 부랑인 집합처였던 이곳은 우거진 나무를 잘라내고 탁 트인 잔디공원과 카페를 조성하면서 시민의 쉼터로 변모했다. 도쿄=김청중 특파원
지난달 10일 찾은 일본 도쿄 도심 서북쪽에 도시마(豊島)구는 5년 사이에 지옥과 천당을 경험했다. 한국인도 많이 찾는 이케부쿠로를 품고 있는 도시마구는 한때 지도에서 사라질 도시 중 하나로 거론돼 충격에 빠졌었다. 그랬던 도시마구가 5년 만에 위기 탈출에 성공한 분위기다.

 

인구 29만명의 이 도시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일본생산성본부가 발족한 회의체 기구인 일본창생회의가 2014년 5월 일본 지방자치단체의 절반에 가까운(49.8%) 지역을 소멸 가능성이 있는 도시로 발표할 때 도쿄 23개 구 중 유일하게 포함된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 지역에 사는 20∼30대 여성 인구의 급감 경향 때문이었다.

창생회의는 젊은 여성의 전입 감소와 출산율 저하로 구의 20∼39세 여성 인구가 2040년 2만4666명으로 2010년(5만135명)의 절반 수준으로 급감할 것으로 예측했다. 같은 기간 전체 구 인구에서 이 연령대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도 17.6%에서 9.0%로 크게 축소될 것이 예상됐다.

쇼크였다. 구는 다음 달 대책본부를 설치했으며, 7월에는 구 여성 간부와 젊은 여성 주민을 중심으로 하는 F1 회의가 개최됐다. 여성을 뜻하는 영어 Female의 첫 자를 딴 F1은 20∼39세 여성을 가리키는 마케팅 용어다. 사토 도모코(佐藤智子) 구청 홍보과장은 “F1 회의 등에서는 지속발전도시로 변화하기 위해서 젊은 여성, 육아 세대가 계속해서 살아가기를 원하는 여성친화, 어린이친화 도시조성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2016년 4월에는 이런 정책을 수립할 담당과도 신설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먼저 어린아이를 키우는 젊은 여성이 가장 고민하는 보육 시설 부족 실태에 눈을 돌렸다. 2014년 어린이집에 해당하는 보육원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던 구의 대기아동 수는 270명에 달했다. 구는 보육원 증설을 위한 지원 강화에 나섰다. 구 내 보육원을 만들 때 시설비의 4분의 3을 구·도쿄도(都)·국가 보조금으로 지원하는 것을 적극 홍보해 보육원 신설을 유도했다. 임차료의 경우에는 건립 후 3년까지는 100%를, 4년째부터는 사회복지법인의 경우 85%, 주식회사 형태의 경우엔 50%를 지원했다. 고령화에 따른 고질적인 일손 부족 문제로 구하기 힘든 보육사를 확보하기 위해 보육사의 주택임차료도 8분의 7까지 지원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구의 보육 관련 지출액은 2014년 23억엔서 올해에는 120억엔으로 5배 이상 늘었다.

도쿄 미나미나가사키공원에서 아트 화장실(Art Toilet) 작업에 참여한 일러스트레이터 이노우에 야스미치씨가 주민과 함께 만들 아트 화장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도쿄=김청중 특파원

구의 적극적인 지원은 효과를 냈다. 2014년부터 지난 4월까지 50개의 사립 보육원이 새로 문을 열었다. 2016년부터는 보육시설 정원보다 입소아동 수가 적어 사실상 대기아동 제로(0)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보육시설 확대와 함께 중점을 둔 것이 여성·어린이친화 도시환경의 조성이다. 핵심은 무섭고(Kowai), 어둡고(Kurai), 더러운(Kitanai) 3K의 장소를 안전하고, 밝고, 청결한 곳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공원, 공용화장실, 지하도 등이 주타킷이 됐다. 먼저 더럽다는 인식이 강한 공원 등의 공용화장실 133곳 중 85곳을 여성·어린이가 사용하기 쉽도록 현대식으로 리모델링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중 24곳은 젊은 예술인과 주민의 공동작업으로 단장하는 아트 화장실(Art Toilet)로 만들고 있다. 미야타 아사코(宮田麻子) 구청 마케팅·커뮤니케이션전문감은 “일본의 화장실 수준은 세계 최고라고 하지만 수년 전까지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많았다”며 “여성·어린이가 사용하기 쉬운 화장실을 만들면 여성·어린이가 살기 쉬운 도시로 연결된다는 구상에 따라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미술작가 우에다 시호(植田志保)씨가 도쿄 이케부쿠로역 지하도를 새롭게 디자인하고 있는 방향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도쿄=김청중 특파원
관광객 유치를 위해 도쿄 도시마구의 번화가인 이케부쿠로 주변을 운영할 레드 버스. 도쿄=김청중 특파원

여성들이 불안을 느끼는 장소 중 대표적인 곳이 철로 밑의 보행로나 지하도 등 어두침침한 길이다. 길이 77m, 폭 3.3m의 이케부쿠로역 지하도도 그동안 여성들에게 어둡고, 무섭다는 이미지를 줬다. 이날 방문한 지하도에서는 벽면과 천장을 ‘여성에게 안심과 쾌적성’이라는 주제로 아름다운 밝은색 그림으로 꾸미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디자인에 맞추어 LED(발광다이오드) 조명의 조도도 밝게 조정할 예정이다. 이 길을 디자인한 여성 미술작가 우에다 시호(植田志保)씨는 “보행자들이 꿈과 희망을 느낄 수 있는 길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과거 여성이 다니기 무서울 정도로 어두웠던 일본 도쿄 도시마구의 이케부쿠로 지하도가 지난달 10일 찾았을 때 도시마구의 여성·어린이친화 정책에 따라 환한 조명과 밝은색 그림으로 새롭게 디자인된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다. 도시마구 제공·도쿄=김청중 특파원

이런 노력으로 도시마구는 소멸위기에서 탈출했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지난해 3월 발표한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의 추계에 따르면 2045년 구의 F1 여성 수는 4만276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창생회의 분석보다 63%나 더 많은 수치이다. 일본의 급속한 고령화나 장기적인 인구 감소 추세를 감안할 경우 구의 전체인구 구성에서 젊은 층 여성의 비율은 지금보다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도쿄=김청중 특파원 c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