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금강산 실무회담’ 제안 거부… 韓·美 동시 압박

“문서 교환 방식으로 합의” 통지문 / 南 시설물 철거로 협의 제한 의도 / 최룡해는 “美, 적대정책 철회해야 / 실제적 조치 있어야 비핵화 논의”

북한이 연일 남한은 무시하고 미국은 압박하고 있다. 북한은 금강산관광 문제와 관련해 우리 측의 실무회담 제안을 하루 만인 29일 거부하며 남북 교착상태를 이어갔다. 미국을 향해선 ‘연말까지 새로운 계산법을 내놓으라’는 기존 요구를 반복하듯 고위 당국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비판 목소리를 높였다.

 

통일부는 이날 북측이 우리 정부의 금강산관광 관련 실무회담 제안을 거부하는 통지문을 보내왔다고 밝혔다. 북한이 통일부와 현대아산 앞으로 보낸 통지문엔 “별도의 실무회담을 가질 필요 없이 문서교환 방식으로 합의할 것”이라는 표현이 담겼다. 통일부는 금강산관광 사업자와 긴밀히 협의하며 대응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설명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측이 실무회담을 거부한 이유에 대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노동신문을 통해 직접 철거 문제를 언급했기 때문에 (남북 협의를) 시설물 철거 문제로 제한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현대아산이 받은 통지문에는 “현대 측이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해 많은 고심과 노력을 기울여 온 것을 안다”고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앞서 정부와 현대아산이 제안한 ‘금강산지구의 새로운 발전 방향’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고 통일부는 설명했다.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매체들은 이날 북한 의전서열 2위 최룡해 북한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 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미국을 향해 적대정책을 철회하라고 공개 주문했다고 전했다.

최룡해

최 상임위원장은 제18차 비동맹운동(NAM) 회의에서 “지금 조선반도 정세가 긴장 완화의 기류를 타고 공고한 평화로 이어지는가, 아니면 일촉즉발의 위기로 되돌아가는가 하는 중대한 기로에 놓여있다”고 주장했다. NAM 회의는 지난 25, 26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렸는데, 최 상임위원장은 북측 대표로 참석했다.

 

그는 회의에서 “미국이 우리의 제도 안전을 불안하게 하고 발전을 방해하는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깨끗하고 의심할 여지 없이 되돌릴 수 없게 철회하기 위한 실제적인 조치를 취할 때에야 미국과 비핵화 논의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의전서열 2위의 이 같은 주장은 미국을 향한 북한 당국의 연이은 압박 발언으로 볼 수 있다. 앞서 지난 24일에는 김계관 북한 외무성 고문이 “우리는 미국이 어떻게 이번 연말을 지혜롭게 넘기는가를 보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27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미국이 자기 대통령과 우리 국무위원회 위원장의 개인적 친분관계를 내세워 시간 끌기를 하면서 이해 말을 무난히 넘겨보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망상”이라고 주장했다.

 

고성항 내 남측이 설치해 북한이 동결 조치한 해금강 호텔의 모습.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다급해진 북한이 자국의 대내·대외·대남 정책을 총괄하는 거물들을 내세워 미국을 압박하면서 동시에 협상 목표의 눈높이를 낮춰 탈출구를 마련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최룡해의 발언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이 보여주고 있는 자세와 일관성이 있다”며 “앞서 김계관이나 김영철, 김정은의 백두산 등정에서 나온 발언과 같은 맥락으로, 북한이 연말 안에 성과를 내려 하는 절박함이 묻어난다”고 해석했다.

 

김형석 대진대 교수(전 통일부 차관)는 “북한은 연말이 다가오면서 미국을 압박하기 위한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미국이 원하는 안을 가져오지 않고, 그렇다고 미사일 발사나 핵도발 등으로 판을 깨면 ‘고난의 행군’ 시기로 돌아간다는 걸 알기 때문에 금강산 문제와 미국을 향한 압박 발언으로 시간을 벌고 명분을 쌓기 위한 두 가지 포석을 담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