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예상을 깨고 30일 문재인 대통령 모친상에 조의문을 보내면서 남북관계에 해빙무드가 조성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여권에서 잠시 일었다. 그러나 북한이 31일 단거리 발사체를 2발 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남북관계 경색이 짙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다. “이해할 수 없는 상중 도발”이라는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후 춘추관 브리핑에서 “김 위원장은 조의문에서 문 대통령 모친 강한옥 여사 별세에 대해 깊은 추모와 애도의 뜻을 나타내고 문 대통령께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 조의문은 전날 오후 판문점을 통해 우리 측에 전달됐다. 윤건영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이 북측으로부터 조의문을 받았는데, 오후 9시35분쯤 빈소가 마련된 부산 남천성당에 들어가 문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31일 조의문 언론 공개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이 남측 인사에게 조의를 표한 것은 지난 6월 12일일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가 별세했을 때 이후 처음이다. 김 위원장은 당시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을 직접 보내 조의문과 함께 조화를 전했다. 청와대는 이날 윤 실장에게 조의문을 전달한 북측 인사가 누군지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핵심 관계자는 “김 부부장이 (남측으로) 전달한 것은 아니다”고만 말했다. 일각에선 조의문을 북한 고위급이 직접 전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가 전달자를 공개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청와대가 조의문 소식을 발표한 지 3시간여 만에 북한이 동해상으로 발사체를 쏘면서 남북관계는 쉽사리 풀리기 어렵다는 사실을 다시 상기시켰다. 이번 도발에는 3분 간격으로 2발이 발사된 것으로 미뤄 초대형 방사포의 연발시험 사격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추정이다. 북한은 지난달 10일 오전에도 초대형 방사포 2발을 발사했으나 한 발은 내륙에 낙하해 실패한 것으로 분석됐다. 북한은 2009년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당시 조의문을 발표한 지 4시간 만에 제2차 핵실험을 단행하기도 했다. 이명박정부 당시 남북관계가 좋지 않아 조문단은 따로 보내지 않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조의문만 발표했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안보전략연구실장은 “조의문을 계기로 남북관계에 새로운 무엇을 한다든가 그런 여지를 없앴다”며 “내년 2월 한·미연합훈련에 관한 결정을 하는 한·미안보협의회(SCM)가 내달 열리는 것을 앞두고 압박을 하겠다는 (북한의) 의도도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도 “김 위원장이 대외적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문 대통령에게 조의문을 보냈지만 초상 기간에 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남한은 안중에도 없고 남북관계의 관리나 개선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 와중에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금강산관광 사업자인 현대아산과 한국관광공사 대표를 만나 북한의 남측 시설 철거 요구에 대해 논의했다. 김 장관이 공식 일정으로 금강산관광 주요 사업자 대표를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병욱·김달중 기자 brightw@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