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2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앞두고 한·일 양국의 강경 기조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미국에 한·일 양국 간 관계 개선을 위한 중재 역할을 요청하고 나섰다. 미국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설지 미지수지만, 미국의 개입에도 한·일 관계의 급진적 개선은 어려울 것이라는 부정적 기류가 흐르고 있다.
외교부는 윤순구 외교부 차관보와 데이비스 스틸웰 미 국무부 차관보가 지난 2일 동아시아 정상회의를 계기로 태국에서 만나 한·미동맹 현안과 한·일관계 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고 3일 밝혔다. 윤 차관보는 이 자리에서 한·일 갈등 상황과 관련, 대화를 통해 합리적 해법을 마련하기 위한 한국 정부의 노력을 설명하고,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미국이 가능한 역할을 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외교부가 전했다.
지금까지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철회 등 태도 변화 없이는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철회하지 않겠다는 강경 입장을 취해왔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지소미아 연장 여부는 일본 측의 태도에 달려 있다”며 “일본이 우리에 대한 경제 보복 조치를 철회하면 우리 정부도 지소미아 문제에 대해서는 전향적으로 검토할 용의가 있다”고 재차 밝혔다. 한국을 안보상 신뢰할 수 없는 국가로 규정한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 배제를 철회해야 우리도 지소미아를 통한 군사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일본에 강경하게 맞서면서도 미국에는 여러 차례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중재자 역할에 나서 달라고 요구해왔다. 윤 차관보의 이번 요청 역시 지소미아 종료가 다가옴에도 일본의 태도 변화나 양국 문제 해결을 위한 뾰족한 방안이 나오지 않자 미국을 끌어들여 상황 전환을 꾀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한 정부 소식통은 “(정부가) 이미 일본에 대한 너무 많은 얘기를 한 상황에서 갑자기 미국을 핑계로 지소미아를 철회하기엔 명분이 부족할 것이고, 이는 일본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미국이 어떤 식으로 개입할지 알 수는 없지만, 현재로썬 한·일 양국 모두 단호한 입장이어서 당장 급진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 역시 “한·일 관계 개선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 센터장은 “한·미 관계 차원에서도 애초에 지소미아는 건드리지 말았어야 할 카드였다”며 “한·일 갈등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을 우리 편에 두고 일본과 싸워야 했는데 지소미아 중단으로 미국이 일본 편에 서면서 이제는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소미아 파기는 한·일 관계는 물론 한·미 동맹과 방위비 분담금 협상 등과도 연계해 우리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정우 기자, 워싱턴=정재영 특파원 woo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