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전 남편 살해 사건의 6차 공판에서는 고유정의 계획적 범행임을 입증할 검찰의 새로운 증거들이 공개됐다.
제주지법 형사2부(정봉기 부장판사)는 4일 오후 2시 201호 법정에서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 된 고유정(36)에 대한 여섯 번째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재판에는 고유정의 이동 동선이 찍힌 폐쇄회로(CC) TV 영상과 통화 내역 등 고유정의 범행 과정, 사건 쟁점을 확인하며 프리젠테이션(PT)을 하는 형식으로 검찰의 서증조사(문서증거조사)가 이뤄졌다.
검찰은 우선 고씨가 졸피뎀 사용에 대한 흔적을 의도적으로 감추려 했던 정황과 증거를 제시했다.
검찰에 따르면 고씨는 제주에 오기 전 청주에서 감기약을 처방받았으며 졸피뎀 성분의 수면유도제 7정을 함께 처방받았다.
그러나 검찰은 나중에 압수된 5일치 약봉지에는 다른 약은 그대로였지만 졸피뎀 성분의 수면제 7정이 모두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앞서 고씨는 유치장에 구속된 상황에서 현남편을 접견했을 때 자신의 분홍색 파우치(간단한 소지품을 넣는 작은 가방)가 압수됐는지 여부를 집요하게 질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현남편은 해당 질문의 의도를 처음에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중에 우연히 고씨의 여행용 가방 안에서 분홍색 파우치 안에 감기약이 들어있었고 졸피뎀 성분의 수면제만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서 경찰에 제출했다.
고씨는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사건 현장에 있던 아들은 피해자를 삼촌이라 지칭하며 함께 카레라이스를 먹었으며 고씨만 먹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검찰이 특히 주목한 것은 고씨가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이었다.
해당 사진에는 싱크대 위에 카레라이스를 다 먹고 난 뒤 햇반과 빈 그릇, 졸피뎀을 넣었던 분홍색 파우치가 담겨있었다.
검찰은 범행장소에 남겨진 혈흔 형태에 대한 국과수의 분석 결과를 통해 우발적 범행이라는 고유정 측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검찰은 펜션 내부에서 피고인이 피해자를 칼로 찌른 뒤 혈흔이 묻은 칼을 수차례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공격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흔적(정지 이탈흔)이 발견된다고 설명했다.
최초 공격이 일어난 다이닝룸에서 피해자가 도망치려고 현관까지 이동하기까지 총 15회 이상 앉은 자세와 서 있는 자세 등으로 공격행위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고씨가 다이닝룸에서 피해자를 우발적으로 찔렀을 뿐이고 도망치다 피해자가 쫓아오는 과정에서 혈흔이 펜션에 묻었을 것이라는 고씨의 주장은 이와 같은 혈흔 분석과 명백하게 배치된다"고 설명했다.
사건 당일 고씨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는 시간(오후 8시 10분부터 9시 50분까지)을 전후해 펜션 주인과 통화한 내용도 법정에서 공개됐다.
3차례에 걸쳐 이뤄진 통화녹음에서 고씨의 목소리는 매우 태연했다.
펜션을 이용할 때 주의할 점을 설명하는 펜션 주인의 말에 중간마다 웃으면서 고맙다고 대답하는 등 고씨는 시종일관 밝게 전화통화를 했다.
특히, 범행 직후인 오후 10시 50분쯤 고씨의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던 아들이 펜션 주인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바꿔주자 “(아들에게) 먼저 자고 있어요. 엄마 청소하고 올게용∼”이라며 웃으면서 말하는 부분에서 방청객들 전부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때는 고씨가 범행 후 피해자를 욕실로 옮긴 뒤 흔적을 지우고 있었을 시각이었다.
검찰은 “성폭행당할 뻔했던 피고인이, 평범한 여성이 이렇게 태연하게 펜션 주인과 전화통화를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검찰은 고씨가 성폭행 정황을 꾸며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내역과 컴퓨터 화면에 검색창 30개를 띄워놓고 범행 관련 검색을 한 내용을 함께 증거물로 제시했다.
검찰은 고유정이 김포에서 사체를 추가 손괴하기 전에 ‘감자탕 먹고 남은 뼈다귀’를 검색했다며 피고인은 보양식이라고 주장했지만 사체 손괴 직전에 검색했다고 강조했다.
고유정은 범행 장소도 치밀하게 검색했다. 호신용 전자충격기, 니코틴 치사량, 뼈의 강도, 무게도 검색한다. 5월 17일 청주에서 졸피뎀을 처방받기 직전에 ‘불면증’을 검색하기도 한다.
검찰은 “고씨의 검색 내용은 단순히 우연하게 이뤄진 검색이 아니다. 해당 검색 내용을 갖고도 고씨가 당시 무엇을 생각했고, 다음 무슨 행동을 했을지에 대해 알 수 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압수한 차량 트렁크에서 목공용 테이블 형태 전기톱이 나왔다며 이는 사체를 추가 손괴하려고 제주에서 출발하기 전에 주문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이아몬드 쇠톱 손잡이에서 피해자의 DNA가 검출됐으며 김포 아파트의 전기와 수도사용량이 급증했다며 추가 사체손괴 증거를 제시했다.
검찰은 범행동기에 대해 이혼과정에서 극도의 증오감으로 면접교섭을 거부해 온 점, 피해자의 법적 대응으로 인해 아들을 현 남편의 아들로 키우겠다는 비현실적 집착, 현 남편과 더 큰 불화를 겪을 수 있다고 생각해 피해자를 없애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피해자 유족에 대한 검찰 측의 증인신문이 있었다.
법정 증인석에 앉은 피해자의 어머니는 “지금, 이 순간 내 아들을 죽인 살인마와 한 공간에 있다는 게 참담하고 가슴이 끊어질 것 같다”며 “존경하는 재판장님, 내 아들을 잔인하게 죽이고 명예를 더럽힌 저 살인마에게 법정 최고형을 내려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간청했다.
이날 고씨 측은 검찰의 주장을 부인하면서도 범행 펜션에 대한 현장검증 요청을 철회했다.
고씨는 유족들의 증언이 진행되는 내내 고개를 푹 숙인 채 재판에 임했다.
고씨에 대한 결심공판은 오는 18일 이뤄진다.
고씨는 지난 5월 25일 오후 8시 10분부터 9시 50분 사이 제주시 조천읍의 한 펜션에서 전남편 강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혐의는 살인과 사체손괴·은닉이다.
이 사건과 별개로 고씨는 또 의붓아들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청주지검으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제주지검은 고씨가 지난 3월 1일 의붓아들 A(5)군이 잠을 자는 사이 몸을 눌러 숨지게 했다고 보고 금주 내에 고씨를 재판에 넘길 예정이다.
제주=임성준 기자 jun258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