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전문 케이블채널로 출발한 엠넷(Mnet)을 ‘오디션 프로그램 왕국’으로 견인한 스타 PD 두 명이 시청자 문자투표 조작 혐의로 구속되면서, 엠넷 브랜드에 치명적인 타격을 안긴 동시에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도까지 무너지는 등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이번 사건은 ‘흥행과 자극’에 골몰한 프로그램 생태계가 빚은 사태라면서, 방송사의 무책임한 태도가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엠넷 ‘먹여 살리는’ PD들 구속…‘포승줄 이동’이 안긴 충격
서울중앙지법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5일 사기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안모 PD 등 4명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진행한 뒤, 안모 PD와 김모 CP(책임프로듀서)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명 부장판사는 “이들의 범죄혐의가 상당 부분 소명되고 사안이 중대하다”며 “피의자의 역할과 수사 경과 등에 비추면 구속 타당성이 인정된다”고 영장 발부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투표조작 의혹에 연루된 다른 제작진 1명과 연예기획사 관계자 1명은 주거나 가족관계, 범행경위, 피해자의 지위와 관여 정도 등을 고려했을 때 구속 사유와 필요성, 타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영장을 기각했다.
2002년부터 엠넷 PD로 활동한 김 CP는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슈퍼스타K 시즌 1~3’을 연달아 히트시키면서 막강한 콘텐츠 파워를 과시했다. ‘댄싱9’, ‘칠전팔기 구해라’, ‘골든탬버린’ 등 다양한 예능도 연출하며 책임프로듀서로서 총지휘관 역할을 해왔다.
대학 졸업 후 10년간 조연출을 거친 안 PD는 ‘슈퍼스타K 시즌2’를 발판 삼아 메인PD가 된 뒤, 2016년부터 ‘프로듀스 101’ 시리즈를 선보이며 이른바 엠넷을 먹여 살리는 스타 PD가 됐다. 그는 ‘슈퍼스타K’ 시리즈에서 비롯한 시청자 투표 시스템에 ‘국민프로듀서’라는 별칭을 붙여 ‘국프 신드롬’도 일으켰다.
하지만 두 스타 PD는 시청자들의 매서운 눈을 간과했다. 지난 7월, ‘프로듀스X 101’ 생방송 최종 경연에서 대다수 예상과 달리 의외의 인물이 ‘데뷔 조(11명)’에 포함되면서 시청자 사이에서 문자투표 조작 의혹이 제기됐고, 경찰은 제작사 압수수색과 관련자 소환 조사 등으로 제작진과 특정 기획사가 순위 조작에 공모한 정황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관련자들 사이에 유흥업소 접대 등 모종의 대가가 오간 정황이 있다고 보고 제작진 일부에게 배임수재 혐의도 함께 적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방송사의 기둥이나 마찬가지였던 스타 PD가 나란히 포승줄에 묶여 이동하는 장면은 방송가와 가요계에 큰 충격을 안길 수밖에 없었다.
엠넷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프듀X’ 관련 물의를 일으킨 점 깊이 사과드린다”며 “다시 한 번 ‘프듀X’를 사랑해주신 시청자와 팬, ‘프듀X’ 출연자, 기획사 관계자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수사 결과에 따라 책임질 부분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며 “다만, 이번 사건으로 피해 본 아티스트에 대한 추측성 보도는 삼가 달라”고 당부했다.
◆“판을 제공한 프로그램 생태계 문제”…“방송사의 무책임이 문제 키워”
전문가들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투영된 욕망 등이 빚어낸 사태로 분석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5일 통화에서 “프로그램 출연진의 경쟁, 단기간에 성공시켜 수익을 뽑아야 한다는 입장, 국민프로듀서로 불리는 시청자 참여의 입김 등이 섞이면서 만든 현상”이라며 “결국 그런 판을 제공한 프로그램 생태계도 문제다”라고 밝혔다. 이어 “시청자에게 희망을 선사했던 초창기 오디션 프로그램과 달리 출연진의 경쟁으로 초점이 옮겨지면서, 내가 지지하는 사람이 스타로 육성되는 과정과 경쟁·결과에 집중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고 강조했다.
시청자들로 구성된 ‘프로듀스X 101 진상규명위원회’ 법률대리인 김태환 변호사도 6일 KBS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서 “제작진이 최초 온라인 투표보다 투표 전 과정의 득표수에 손을 대서 순위를 조작했다고 보고 있다”며 “데뷔 아이돌로 이익을 얻는 방송사에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방송사가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면서 여기까지 (문제를) 끌고 왔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투표에 참여한 시청자들이 유료문자메시지 송신, 정신적 피해에 따른 배상을 받을 수는 있다”면서도 “멤버 선발을 둘러싼 진실을 밝히는 게 최우선 목표인만큼 손해배상에 대한 부분은 (아직)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