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택지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 적용 지역이 발표됐다. 서울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의 22개 동과 이른바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의 4개 동, 영등포 여의도동 등 모두 27개 동이 들어갔다.
이들 지역 민간택지에서 분양하는 일반 아파트는 당장 8일부터, 재건축·재개발 아파트는 내년 4월 29일 입주자 모집공고 신청 단지부터 상한제가 적용된다. 상한제 지역에서 아파트를 분양할 때는 택지비와 건축비를 더해 분양가 상한을 정한 뒤 반드시 그 이하로 분양해야 한다. 최장 10년의 전매제한, 2∼3년의 실거주 의무도 부과된다.
이번 적용지역 발표로 2015년 4월 이후 사실상 시행이 중단됐던 민간아파트 분양가 상한제가 4년 7개월 만에 집값 안정 정책수단으로 부활했다.
다만, 서울의 외곽지역의 다른 곳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분양가나 집값이 많이 올라 전문가들 사이에서 상한제 지정이 유력시됐던 서울 서대문·종로·동작구와 경기 과천·분당 등이 빠졌다.
집값 불안도 막아야 하고, 경기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보니 상징성이 강한 곳을 골라 타격하는 차선책을 택한 것 같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집값은 국민들의 주거 안정과 삶의 질에 직결돼 있다. 집값 특히 서울 등 수도권의 집값이 턱없이 오르면 무주택자나 좁은 집을 넓혀가려는 실수요자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준다.
집값을 안정시키는 일이야말로 어떤 정부가 들어서던 정부의 기본책무다. 문재인 정부가 순기능 못지않게 부작용도 많아 오랫동안 사문화했던 민간아파트 분양가 상한제를 되살린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강력한 정책수단인 분양가 상한제까지 시행하고서도 집값을 제대로 잡지 못한다면 정부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정부가 전망한 대로 상한제 지역 분양가가 5∼10% 낮아진다면 서울 지역 아파트 시장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다.
어떡하든 뛰는 집값을 잡으려는 정부의 의지는 단단해 보인다. 관계기관 합동 조사를 통해 최근 집값 상승세를 부추기는 투기수요의 자금 조달계획서를 면밀하게 조사해서 편법 증여나 불법 대출, 시장교란 행위를 엄벌하겠다고도 했다.
이번 분양가 상한제가 오름세의 서울 집값을 잡는 데 도움은 되겠지만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집값이 오르는 것은 고분양가가 주변 집값을 끌어올려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생기는 부분도 있지만, 초저금리 시대에 갈 곳을 잃고 떠도는 1000조원 안팎의 단기 부동자금도 집값 상승의 중요한 원인이다.
전문가들은 이상징후가 보이면 상한제 지역을 추가 지정하는 등 정책 수단을 총동원해서라도 집값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며 경기에 물꼬를 터줘 부동자금이 생산적인 방향으로 흐르게 하는 것도 집값을 누그러뜨리는 좋은 수단이라고 말한다.
분양가 상한제가 본격 시행되면서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지는 상한제 적용 여부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모습이다.
당장 상한제 적용을 받게 된 곳은 사업 추진에 적지않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상한제 대상 지역의 분양가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규제 가격보다 낮을 것으로 예상돼 과거와 같은 사업성을 보장받기 어렵게 됐다.
이에 비해 상한제 대상에서 빠진 곳은 사업 속도를 높이면서 풍선효과가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상한제 대상 단지는 내년 4월 전까지 일반분양을 마치기 위해 속도전에 들어갈 전망이다.
분양가 상한제 대상지역은 앞으로 일반분양가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규제보다 분양가가 더 낮아진다.
◆분양가 상한제 대상에서 빠진 지역 사업 속도낼 듯
국토부 이문기 주택토지실장은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지만 분양가 상한제 분양가가 HUG 분양가보다 약 5∼10% 정도 낮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연합뉴스가 감정평가사에 의뢰해 서초구 반포동 반포 주공 1·2·4주구(주택지구)의 분양가 상한제 가격을 추산한 결과 3.3㎡당 3000만원 후반∼4000만원 초반에서 분양가 결정될 것으로 예상됐다.
이는 현재 반포 주공1단지 인근의 주변 아파트 시세(3.3㎡당 6000만∼9000만원)는 물론, 올해 5월 HUG의 분양가 심사를 받아 분양한 서초 방배그랑자이의 3.3㎡당 4687만원이나 삼성동 상아2차 4750만원에 비해서도 10% 이상 낮다.
강동구 둔촌 주공아파트의 상한제 분양가는 3.3㎡당 2300만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HUG 기준의 분양가가 추정 금액이 3.3㎡당 2600만원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13%가량 낮은 것이다.
분양가 상한제의 땅값을 표준지 공시지가를 기초로 산정하라는 정부 기조와 한국감정원 검증 절차 등을 고려할 때 앞으로 상한제 땅값이 상당히 보수적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이 때문에 상한제 대상 단지 가운데 일부는 사업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재건축 단지의 경우 상당수 사업이 지연되는 것은 물론, 사업 초기 단지들은 "규제가 풀릴 때까지 기다려보겠다"며 장기전에 돌입할 공산이 크다.
◆사업 초기 단지들 "규제 풀릴 때까지 기다릴 것"…장기전 돌입?
아예 분양을 포기하는 단지도 나올 전망이다.
영등포구 여의도동 '브라이튼 여의도'는 이번 상한제 대상지역 지정되면 사실상 일반분양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이 아파트 시행사는 아파트 450여가구에 대한 일반분양을 포기하고 임대로 돌리는 방안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상한제 대상지역에서 이미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곳은 내년 4월 말까지 일분분양을 서두르거나 최대한 앞당기는 등 속도전에 들어갈 전망이다.
지난달 29일 주택법 시행령 공포일을 기준으로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단지가 내년 4월까지 일반분양할 경우에는 분양가 상한제 대상 지역에서 제외된다.
강남구 개포동 주공1단지와 주공4단지, 강동구 둔촌 주공, 서초구 신반포15차 등은 내년 4월 전까지 분양을 하면 상한제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속도전을 펼치고 있다.
강동구 둔촌 주공아파트의 경우 내년 2월경 일반분양에 들어가 상한제를 피해간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반포 주공1단지처럼 현재 소송에 걸려 있는 단지는 이미 관리처분인가를 받았음에도 내년 4까지 일반분양이 어려워 상한제 적용이 불가피하다.
이런 단지는 앞으로 재건축 사업 추진이 상당기간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
반포 주공1단지는 시공사인 현대건설이 일반분양가를 3.3㎡당 5100만원에 맞춰주기로 보장해 분양이 가능할 수 있지만 조합원간 소송전이 문제다. 자칫 관리처분인가가 무산될 경우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가 적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일반분양분 '통매각'을 추진했으나 정부와 서울시의 반대로 무산된 신반포3차·경남아파트 단지도 일단 내년 4월까지 일반분양을 하지 못할 경우 분양가 상한제 적용을 받게 된다.
송파구 잠실 주공5단지도 현재 건축심의 단계로 상한제 적용 대상이다.
이번에 상한제 대상 지역에서 제외된 곳들은 일단 상한제 부담없이 재건축 등 사업 추진이 진행될 전망이다.
현재 재건축 지구단위계획 수립 단계에 있는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나 마포구 성산 시영, 과천시나 광명시 일대 재건축 단지들도 사업 추진에 속도를 낼 수 있다.
올해 일반분양을 앞둔 서대문구·동대문구 등지의 재개발 사업도 차질없이 진행될 전망이다.
◆비대상지역들도 안심할 순 없어…정부 "시장불안 우려시 신속하게 추가 지정"
그러나 당장 상한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해도 결코 안심할 수는 없다.
정부는 이번 상한제 대상지 선정을 '1차 지정'이라 강조하고, 비대상지역도 고분양가 책정 움직임 등 시장불안 우려가 있을 경우 신속히 추가 지정하기로 했다.
분양가 상한제 동별 지정을 '집값 관리' 카드로 사용하겠다는 의미다.
당장 이번 지정에서 제외된 서울 일부 지역과 과천·하남 등지는 집값이 계속 불안해지거나 고분양가 우려가 있을 경우 곧바로 추가 지정 대상에 오를 전망이다.
그러나 상한제 대상에서 제외됐더라도 일부 단지는 HUG의 분양가 규제로 사업이 녹록지는 않을 전망이다.
종로구 세운3구역 등 세운정비사업은 당장 분양가 상한제는 피하게 됐지만 HUG와의 분양가 갈등으로 일반분양이 중단된 상태다.
동작구 흑석3구역도 동작구가 상한제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HUG와 분양가 갈등을 빚고 있다.
◆상한제 지정 가능성 높았던 과천 제외된 까닭은?
이번에 정부가 1차로 지정한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대상지역은 대체로 서울에서도 집값이 높으면서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재료가 있는 곳들이다.
재건축·재개발 추진 단지가 있어도 인근 집값이 높지 않거나 당장 고분양가 우려가 없다고 판단되는 곳은 일단 대상지에서 제외했다는 것이 국토부의 설명이다.
다만 과천·동작구 흑석동 등 최근 집값이 급등한 일부 과열지역이 상한제 대상에서 빠지면서 형평성 논란도 제기된다.
상한제 지정 가능성을 높게 점쳤던 과천이 제외된 것이 대표적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과천의 경우 별양동 주공4단지가 조합설립인가 단계, 중앙동 주공 10단지와 별양동 주공5단지가 각각 추진위 설립, 주공 8·9단지는 안전진단을 통과하는 등 재건축 사업지들이 남아 있다.
압구정이나 방이동 등 서울 강남권이 재건축 추진위조차 없는 상태에서 상한제 대상으로 묵였다는 점에서 의문이 남는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과천시의 경우 재건축 일반분양이 멀었고, 일반분양분도 많지 않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동작구 흑석동 뉴타운 일대가 제외된 것도 의외다.
현재 흑석뉴타운은 일반분양을 앞둔 흑석3구역 외에도 흑석11구역(조합설립인가), 9구역(사업시행인가) 등이 사업을 추진중이다. 흑석3구역은 정부의 분양가 상한제 추진 계획이 발표되자 후분양을 추진하기도 했다.
2017년 8·2대책 이후 과천과 동작구의 아파트값은 각각 17.84%, 11.65%나 뛰어 서울 강남·서초구 상승률을 웃돈다.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도 재건축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고, 일부 주민들이 예비안전진단을 신청하는 등 움직임이 있지만 상한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아직 재건축 지구단위계획도 수립되지 않았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신축 아파트로 수요 몰릴 가능성 높아"
전문가들은 일단 상한제 적용 지역의 재건축 아파트값은 상승세가 주춤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분양가 상한제 규제가 재건축·재개발·리모델링 등 정비사업에 한정되고, 일부 상한제 대상 제외지역이나 신축 아파트로 수요자들이 몰리는 등 풍선효과에 대한 우려도 여전했다.
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박원갑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초기 재건축 단지는 안전진단 강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 분양가 상한제까지 3중 규제를 받게 되면서 사업이 어려워지고, 투자수요도 위축될 것"이라며 "다만 초저금리로 시중의 유동자금이 많은 만큼 재건축 가격이 급락하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내년 4월29일까지 일반분양이 가능한 재건축 단지들은 상한제를 피한 만큼 매수세가 몰릴 가능성도 있다.
반면 상한제 비대상지역이나 신축아파트로 자금이 쏠리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김태섭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산업실장은 "이번 지정에서 제외된 목동이나 흑석뉴타운·재개발 사업지 등으로 투자수요가 몰릴 수 있다"면서 "정부가 과열지역을 추가 지정한다 해도 신축 등 기존 아파트로 쏠리는 관심까지 막긴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NH투자증권 김규정 부동산연구위원은 "핀셋 지정으로 공급 위축 우려를 막겠다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형평성 논란 또는 풍선효과 우려로 인해 계속해서 대상지역 지정이 늘어나면 핀셋지정이 의미가 없게 된다"며 "공급 부족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상한제 시행으로 전세시장이 불안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많다. 현재 강남 등 일부 지역은 전셋값이 한 달 새 5000만∼1억원 이상 급등하고 있다.
상한제 시행에 따른 청약 대기수요 증가, 자사고 폐지·정시 확대 등 입시제도 변화가 전셋값 상승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 추가 대책 예고하곤 있지만 꺼낼 카드 마땅치 않아
전문가들은 상한제 시행 이후에도 집값이 잡히지 않을 경우 추가 대책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한다.
국토부도 "시장 불안이 재현될 경우를 생각해 추가대책을 준비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당장 꺼낼 쓸 카드는 마땅치 않다. 일단 정부는 실거래가 합동 조사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김현미 장관도 이날 주거정책심의위원회 모두 발언에서 "현재 진행 중인 자금조달계획서 점검도 최고 수준으로 강도를 높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과거 거론됐던 재건축 연한을 현행 30년에서 40년으로 확대하는 방안, 1주택자의 양도소득세 비과세 혜택을 축소하는 방안, 다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를 더욱 강화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으나 구체적으로 검토된 바는 없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