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11월14일)을 엿새 앞둔 8일 오전 11시50분쯤,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도 용기포항 여객터미널. 백령고등학교 이종열 교감의 “하나, 둘, 셋!” 하는 구령에 ‘수능대박기원’ 현수막을 앞에 든 이 학교 3학년 학생 21명이 “파이팅!”하고 외쳤다. 이들은 김하늘(29) 담임교사 등의 인솔하에 낮 12시50분 출항하는 배를 타고 수능 보러 인천으로 떠나는 길이다.
백령도에서 유일한 고등학교인 이 학교는 옹진군 일대 섬 지역에 수능시험 고사장이 마련되지 않아, 매년 20여명 수험생을 인천 시내로 떠나보내는 ‘수능 원정’ 전통이 있다. 비슷한 처지의 연평고(12명), 대청고(5명), 덕적고(3명) 학생들도 수능 응시를 위해 조만간 육지로 향할 예정이다.
선배들의 장거리 뱃길(230㎞)을 배웅하고자 2학년들도 선착장에 나왔다. 학생회장 박지민(17) 양은 “좋은 마무리를 위해 파이팅!”이라고 응원했으며, 부회장 김은채(17) 양은 “(선배들의) 그동안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힘을 불어넣었다. 백령고 수험생 일부는 수시전형에서 최종합격이 결정됐지만 수능 최저 등급을 맞추기 위해 수능을 보러 나섰다.
◆3년 내리 담임이 수능 배웅까지, 해병대 교육봉사활동도 큰 힘...올해부터 친적집이 아닌 인천시가 지원한 숙소에서
승선 대기 중인 제자들을 바라 보는 김 교사의 감회는 남달랐다. 임용고시 합격 후, 처음 부임한 학교인 데다가 1학년 때부터 줄곧 이들의 담임을 맡고 있어서다. "3년 내내 가르친 제자를 수능까지 배웅하는 건 흔치 않은 일 같다"라는 그는 “아이들이 더 넓은 세상 향한 발걸음을 뗀다”고 수능 원정에 의미를 부여했다. 내년 인천 시내로 전근이 예정된 김 교사는 제자들과 함께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문 앞에 서 있다.
백령고 학생들은 방과 후 수업과 백령도 주둔 해병대 교육봉사에서 큰 도움을 얻는다. 김 교사는 “해병대에서 봉사활동 나온 군인들이 영어, 수학, 체육 등을 아이들에게 가르친다”며 “수험생활에 정말 많은 도움이 된다”고 고마워했다.
지난해까진 백령고 등 도서 지역 수험생들은 인천 시내 친척집이나 기타 장소에 머물며 시험을 준비했지만, 올해부터는 인천시와 인천시설공단 등의 왕복 교통비·숙식 지원을 받는다. 백령고 학생들은 인천의 한 청소년 시설에서 머물며, 수능 다음날 집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해양생물학자, 기업 경영, 교사…서해 바다와 함께 키운 꿈
탁 트인 서해 바다와 함께 학업에 정진해온 학생들의 장래희망이 궁금했다.
김준택(18) 군은 미래에 해양생물학자가 되는 게 꿈이다. 백령도에서 나고 자란 준택 군은 “우리나라 해양생태계를 연구하고 싶다”며 “나이가 들면 백령도로 돌아와 ‘점박이물범’ 보호에 힘을 보태고 싶다”고 각오를 내비쳤다. 준택군에 따르면 점박이물범이 몸길이 1.4m, 몸무게 90㎏까지 성장하며,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300여 마리가 매년 3~11월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관찰된다.
지난해 학생회장이었던 오예원(18) 군은 경영인이 꿈으로, 현재 수시전형의 면접시험만 남았다. 해병대인 아버지를 따라 외지에서 백령도로 10년 전 들어온 예원 군은 아버지의 부대 전출로 두 차례 뭍에 나갈 기회가 있었지만, 우정에 무게를 둬 섬에 남았다. 이후 아버지가 백령도로 재전입,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예원 군은 면접시험이 수능일 후에 있어 그때까지 인천에 남는다.
초등학교 교사가 꿈인 김민정(18) 양은 백령고와 도시 학교의 차이를 묻자, “선생님과 우리 사이에는 두터운 친밀감이 있다”고 답했다. 민정 양은 “학생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싶어서 교사가 되기로 했다”며 내년에 다른 학교로 전출가는 스승 김하늘 교사에게 “우리를 이끌어주셔서 감사하다”고 쑥스럽게 인사했다.
인천=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