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초, 범죄자를 중국으로 인도할 수 있도록 한 법안에 반대하여 시작된 홍콩의 시위는 4개월 넘게 진행되면서 점차 민주화 시위로 진화하고 있다. 특히 중국 정부의 강한 영향력에 맞서 직선제의 보통선거를 요구하는 홍콩 사람들은 그들이 영국의 제도하에서 누렸던 자유가 축소되고 있는 상황에 크게 분노하는 중이다.
그런 홍콩 시위대가 지난주에는 4m 높이의 ‘자유의 여신상’을 만들어 세웠다. 홍콩과 영어권에서는 ‘레이디 리버티(Lady Liberty)’라는 영문명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외부에 알려진 사진과 버전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홍콩 시위대의 전형적인 복장, 즉 안전모와 고글, 마스크를 쓰고 있고 허리에 차는 패니 팩과 2014년 이후 홍콩시위의 상징이 된 우산을 들고 있는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우선 왜 여성, 혹은 여신이 등장하는지부터 살펴보자. 인류는 오래도록 땅을 여성으로 생각해왔다. 여성이 아이를 낳듯 땅도 곡식을 산출하기 때문이다. 그런 전통이 유럽에서는 ‘땅=국가=여성’이라는 사고로 발전했고, 근대 국민국가에 이르러서 특정 국가를 이미지로 표현할 때 여성, 혹은 여신의 모습으로 의인화하는 일이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영국의 브리태니아, 프랑스의 마리안이었다.
그렇다면 미국의 상징인물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미국이 독립하기 전만 해도 서구 강대국은 미국이 문화적으로 뒤떨어진 야만적인 땅으로 묘사하는 습관이 있었고, 브리태니아나 마리안 같은 여성에 대응하는 미국의 상징을 인디언 여성이라는 “야만인”으로 그리곤 했다. 하지만 미국이 독립을 하고 본격적인 근대국가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에서 인디언 이미지를 버리고 유럽 국가들처럼 서구 여성의 모습을 상징으로 하기 시작했는데, 그때 등장한 두 개의 이미지가 컬럼비아와 자유의 여신이었다.
처음에는 이 두 가지가 혼용되다가 점차 후자인 자유의 여신이 더 보편화되었는데 그 계기 중 하나가 1863년에 미국 국회의사당의 돔 꼭대기에 설치된 ‘자유의 여신상(Statue of Freedom)’이다. 1850년대에 그 동상을 제작하던 조각가 토머스 크로퍼드는 여신을 머리에 챙이 없는 모자를 쓴 모습으로 디자인했다. 필레우스(pileus)라고 불리는 이 삼각형 모자는 고대 로마시대에 해방된 노예들이 쓴 이후로 자유의 상징으로 사용되었고, 들라크루아의 그림 속 여성도, 프랑스의 상징 마리안도 이 모자를 쓰고 있다.
문제는 그 동상의 디자인을 결정하던 1850년대는 미국이 노예제도 폐지를 둘러싸고 남북전쟁(1861-1865)으로 치닫는 시기였다는 사실이다. 훗날 노예해방에 반대하는 남부연합의 대통령이 되는 제퍼슨 데이비스 상원의원은 그 모자가 미국의 흑인 노예를 해방하자는 주장을 담고 있다며 분노했고, 그의 반대에 부딪혀 미국 의사당 건물에 올라가게 된 자유의 여신상은 인디언 의상에 로마식 투구를 쓴 여성의 모습으로 제작되었다.
자유의 여신상에 정치적인 메시지를 최소화하려는 경향은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에도 반영되었다. 조상의 높이만 46m에 달하는 이 작품은 프랑스에서 노예제도에 반대하는 조직을 이끌던 에두아르드 르네 드 라불라예와 역시 노예제도에 반대하는 조각가 프레데리크 오귀스트 바르톨디가 의기투합해서 아이디어를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혁명의 과격한 이미지를 꺼렸기 때문에 그들은 들라크루아의 낭만주의 작품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원했고, 신고전주의 스타일의 여성으로 자유의 여신상을 디자인한 것이다. 비록 전쟁은 끝났어도 미국이 여전히 남북 갈등에서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과격한 상징을 피하려는 정치적 고려도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홍콩의 ‘레이디 리버티’는 미국에서 꺼렸던 “과격한” 들라크루아의 혁명적 이미지를 계승한, 시위대의 저항정신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작품이다. 들라크루아의 그림과 마찬가지로 혁명, 혹은 시위가 진행 중인 시점에 제작되었다는 공통점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미국의 신고전주의적 여신상 대신 낭만주의적 전통을 따른 선택은 흥미롭다.
이 글을 쓰는 동안 홍콩의 사자섬 정상에 설치된 레이디 리버티를 누군가 파괴하고 붉은 스프레이 페인트를 뿌렸다는 뉴스가 나왔다. 언젠가는 그 자리에 영구적으로 다시 서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예수상처럼 홍콩을 내려다보는 상징이 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