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은 독일 베를린장벽이 붕괴된 지 30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를 맞아 한반도에서의 통일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최근 들어 한반도 통일이 점점 더 멀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 세대가 가지는 통일에 대한 무관심은 우려사안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기능주의적 통일정책을 지향해 왔다. 우리도 독일처럼 포용정책에 기반한 평화적 통일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낙관론이 존재하고 있다. 즉, 남북한 간 경제교류 및 협력이 향후 통일의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필자가 만나본 많은 독일 학자 및 전문가들은 한반도와 독일 상황이 매우 상이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실제 양 국가는 통일을 이루기 위한 환경이나 조건이 매우 상이했다.
먼저, 독일은 우리와 같은 전쟁을 치른 국가가 아니다. 즉, 민족적 동질성이 매우 강하게 유지돼 있었다. 냉전이 시작되고 1961년 베를린장벽이 구축되는 상황에서도 독일 국민은 왜 우리가 갈라져야 하느냐는 질문을 지속적으로 던지고 있었다. 민족적 동질성이 냉전체제에 의해 훼손되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반도의 경우 6·25전쟁으로 남북한 간의 동질성이 매우 심하게 훼손됐으며, 탈냉전시대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남북한 간 반목의 역사를 재차 지속시켜 주는 또 하나의 원인이 되고 있다. 또한 동독 주민들은 외부 정보에 상당 부분 노출돼 있었으며, 심지어 공직자가 아닌 일반 주민은 제3국을 경유해 서독의 친척을 방문할 수 있었다. 현 북한과는 매우 다른 상황이었다. 정보 유입을 철저히 차단하고 통제하는 북한은 서독정부의 ‘신동방정책’과 같은 포용정책이 효과를 거두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고 있다. 마지막으로 독일은 이미 바이마르공화국을 통해 민주주의를 경험한 국가였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총선거에 의해 출범한 바이마르공화국은 독일민주공화국 헌법을 반포했으며, 국민주권과 국민의 기본권을 담고 있었다. 이 같은 독일 국민의 민주주의체제 경험은 훗날 동독 주민이 사회주의 정권에 항거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 주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