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서울 성북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70대 어머니와 40대 세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갑자기 생계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안타까운 사례는 우리 사회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경제적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대출을 해주는 사단법인 ‘더불어사는사람들’의 이창호(65) 상임대표를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 대표는 “처음에는 다 얼굴을 보고 빌려줬는데 활동이 점차 알려지면서 대출 신청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전화로 진행하는 비대면 대출로 전환했다”며 “지금까지 빌려준 돈 중 87%는 필요한 곳에 쓰여진 뒤 돌아오는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더불어사는사람들에서 최초로 빌릴 수 있는 금액은 30만원이다. 상환 실적이 쌓이면 다음번 대출 한도는 조금씩 올라간다. 누군가는 이 돈으로 밀린 월세를 갚기도 하고, 누군가는 감기 정도로는 가볼 엄두도 못냈던 병원에 가기도 한다. 이 대표는 “대출을 신청하는 사람 중에는 전 재산이 100만원도 안 되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더불어사는사람들은 복지 등의 맞춤형 지원도 함께 하고 있다. 이가 아픈 사람에게는 치과 진료를, 막 자녀를 출산한 사람에게는 기저귀를 지원하는 등 상황에 따라 필요한 제품과 서비스를 연계해 제공하는 것이다. 공적 지원제도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보건복지부의 긴급복지지원은 물론 각 지방자치단체와 사회복지관 등에서 별도로 실시하는 지원도 연계해 줬다.
“한 남성이 어머니가 편찮으시다며 링거 주사와 MRI(자기공명영상) 촬영이 필요해 돈을 빌려 달라고 했습니다. 돈이 아니라 의사를 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까운 병원에 무작정 전화해서 원장에게 이런 일을 하는데 무료로 검사를 해줄 수 있겠냐고 물어봤더니 ‘일단 환자를 봐야 하지 않겠냐’고 와보라고 하더군요. MRI 촬영을 마치고 그 남성은 고맙다고 소액 후원도 했습니다. 재능기부와 후원까지 이끌어낸 사례죠.”
빌려주는 금액은 크지 않지만 누군가 자신을 믿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 희망을 갖게 하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이 대표는 강조했다. 대출에서 그치지 않고 건강한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기 위해 이 대표는 대출자에게 가계부를 작성하라고 권유한다. 고용노동부의 고용정보시스템(워크넷)에 등록하고 구직활동을 하는 조건으로 돈을 빌려주기도 한다.
그는 “정부 지원을 받지 않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 과정에서 함께한 후원자들께 고맙고 신청자가 너무 많아 상담을 하고도 돈을 빌려줄 수 없는 분들에게는 늘 죄송하다”며 “앞으로 성실 상환자에게는 쉽게 돈을 찾아 쓸 수 있는 체크카드 같은 걸 만들어주고, 신용평가업체와 협력해 신용등급을 올려주는 사업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사진=백소용 기자 swini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