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低)물가 2020년까지 지속 땐 ‘일본형 불황’ 덮칠 수도” [한국경제 출구를 찾아라]

경제 전문가들 진단 / 올 8·9월 사상 첫 ‘마이너스 물가’ 충격 / 2019년 내내 0%대… ‘1.6% 목표’ 크게 못 미쳐 / “물가만 봤을 땐 디플레 초기” 경고에도 / 정부 “일시적 현상… 디플레 아냐” 낙관

“2010년 이후 5∼6년간 우리나라의 물가상승률 추이는 1990년 이후 5∼6년간 일본의 물가상승률 추이와 너무 흡사해 인구구조의 유사성을 볼 때처럼 왠지 모르게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 (중략)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일본이) 우리보다 더 빠르게 (물가상승률이) 1% 밑으로 내려갔고 급기야 마이너스 물가상승률, 디플레이션에 빠지게 됐다.”

박상준 일본 와세다대 교수가 2016년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장기불황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 ‘불황터널’이라는 저서의 일부분이다. 20년 가까이 일본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박 교수는 한·일 경제 전문가로 꼽힌다.



박 교수의 경고가 나온 지 3년 뒤인 지난 9월, 우리나라 물가상승률이 1965년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18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 9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5.20으로 전년 동월 대비 -0.4% 감소했다.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공식발표로는 0.0%였지만 소수점 셋째 자리까지 따지면 -0.038%로 사실상 2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한 셈이다. 지난 10월에는 0.0%를 기록하며 보합세를 유지했다.

정부가 지난해 연말 내세운 올해 소비자물가상승률 목표치는 1.6%다. 하지만 지난 1월 0.8%를 시작으로 지난달까지 10개월째 단 한 차례도 1.0%대 상승률을 기록하지 못했다. 2015년에도 2월부터 11월까지 10개월 동안 0%대 물가상승률이 이어졌지만 올해처럼 마이너스 물가를 기록한 적은 없었다.

물가가 계속해서 떨어지면 소비자는 가격이 내려갈 것을 기대해 소비를 미루게 되고, 생산자는 물건을 팔 수 없으니 가격을 내리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생산과 투자 역시 위축된다. 물가 하락과 경기 침체가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셈이다.

정부는 물가상승률 마이너스 기록은 ‘일시적 현상’일 뿐 디플레이션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정부는 지난 8일 문재인정부 반환점을 맞아 배포한 ‘한국경제 바로알기’ 자료에서 “최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낮은 모습을 보이지만, 물가가 장기간 광범위하게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상황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저물가 원인으로는 “농산물과 유가 하락이 물가상승률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면서 “일시적 물가 하락으로 디플레이션 발생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강조했다.

저물가 상황에 대응해서는 통화정책(금리 인하)과 확장적 재정 정책을 통해 물가를 끌어올릴 수 있지만 디플레이션 상황에선 그마저도 먹혀들지 않는다. 일본이 대표적 사례다. 일본이 ‘제로금리’ 정책과 재정 확대 정책을 펼쳤으나 시장에 먹혀들지 않았고, 일본의 국가채무비율은 220%를 넘어선 상황이다.

전문가들이 디플레이션을 경고하는 이유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날 통화에서 “3대 물가 지수(소비자물가지수(CPI)·생산자물가지수(PPI)·GDP디플레이터)가 ‘마이너스’를 보이고 있다. 물가만 놓고 보면 디플레이션 초기에 있다”면서 “저물가 현상이 내년까지 2년 연속 지속된다면 일본과 같은 장기불황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세종=박영준 기자 yj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