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연출가’ 탁현민의 우려 현실화?…아쉬움 컸던 ‘국민과의 대화’ [이슈톡톡]

 

“내가 청와대에 있었다면 ‘국민과의 대화’ 연출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반환점을 맞아 19일 MBC가 마련한 ‘국민과의 대화’ 행사를 하기 전날 탁현민 대통령 행사기획 자문위원이 tvN ‘김현정의 쎈터:뷰’에 나와 우려를 표시하며 한 말이다. 2017년 5월 문재인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으로 일하며 올초 청와대를 떠날 때까지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기업 총수들과의 호프 미팅,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등 문 대통령을 돋보이게 한 굵직한 행사들을 기획한 ‘청와대 연출가’로 문 대통령 임기 초반 고공 지지율을 이어가는 데 한몫했다.

 

이번 행사를 자문하지 않았다는 탁 위원은 “300명의 표본집단을 과연 어떻게 뽑아낼 수 있을지, 또 대통령에게 궁금한 300명을 무작위로 뽑으면 그게 전체 국민과 대화에 부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드러냈다. 그는 다음날 페이스북에서도 “무작위로 질문자 선정하면 중복과 질문 수준에 이견이 있을 것이고 참여 대상자를 직접 고르면 짜고 했다고 공격할 것이 자명하다”며 “질문의 수준, 분야, 깊이, 답변의 수위와 내용까지 모두가 고민되는 지점이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문 대통령이 질문을 받는 순간 현장의 방청객 300명이 일제히 손을 들었다. 방송이 즉석에서 문답을 주고받는 일명 ‘타운홀 미팅’ 방식으로 진행된 만큼 방청객들은 서로 자신의 사연을 들어달라고 외쳤고 어수선한 장면이 생방송 내내 반복됐다. 사회자 배철수씨와 진행을 돕는 아나운서들도 어쩔줄 몰라하며 방청객들을 진정시키느라 애를 먹었다. 하지만 질문 기회를 얻지 못한 방청객들은 답답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채 2시간도 안 되는 시간에 17명의 질문과 3개의 온라인 질문을 받았다.

 

하지만 대통령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문재인정부와 국정 방식과 주요 국정 현안 등을 놓고 허심탄회하게 다양한 국민의 목소리를 가감없이 듣겠다는 행사 취지를 살리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패널들의 질문도 많은 국민이 문 대통령에게 직접 듣고 싶은 국민적 관심사보다 개인적인 애로사항이나 민원을 전달하는 수준이 적지 않았고, 문 대통령의 답변도 원론적이거나 속시원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예컨대 부동산 시장 불안과 주거난, 일자리 문제와 심각한 경제 양극화, 갑작스러운 정시확대와 외국어고, 자사고 폐지 방침, ‘조국 사태’ 등 인사 난맥,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관계 해법,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등을 둘러싼 한·미·일 갈등 해소 방안, 갈라진 국론 통합 방안 등에 대한 얘기를 심도있게 들을 수 없었다. 문 대통령이 방송 초반 “출제범위가 무한대여서 참모들이 공부하라고 어제, 오늘 외부 일정을 안 잡아줬다”며 질의 응답에 나섰지만 국민들을 충분히 설득하기엔 한계가 분명했다. 

 

박지원 무소속 의원이 20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좋은 시도지만 산만했다”며 “탁 위원의 말이 옳았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물론 문 대통령이 임기 후반기에 ‘협치’와 ‘소통’에 더욱 힘쓰겠다며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 자체는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정작 국민들이 듣고 싶어하는 얘기를 들을 수 없었다는 뒷말이 무성해 아쉬움이 크다. 앞으로 원활한 소통 행보를 위해서라도 참모들과 함께 뭐가 문제였는지 되짚어봤으면 한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