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개통 묵호, 감성과 맛 자극 논골담길로 대변신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장사하는 아낙네···주막···말뚝박기 놀이하는 아이들/골목마다 꽃핀 옛 이야기/어획량 급감하며 쇠락했던 항구마을/추억과 예술이 만나 벽화마을로 탄생/산비탈 알록달록 집들 이국적 풍경/스카이밸리 조성 등 특화관광지로 변신중

 

아낙네1 “논골 영식아제 새장가 간다우∼.”

 

아낙네2 “새장가 든다고? 샥시가 이쁜가 보우.”

 

아낙네1 “샥시 나가 스므살 어리다꼬. 왕문어 마이 묵은갑제.”

 

아낙네2 “왕문어 지만 쳐묵나. 울 영감도 매일 묵어쌌는데 쯧.”

 

보는 순간 배꼽을 잡고 눈물이 나올 정도로 웃었다. 묵호항에 좌판을 열고 생선을 팔던 옛 아주머니들의 대화인데 동해시 묵호진동 논골담길 모퉁이의 아주 낡은 집 벽화로 장식돼 눈길을 잡아끈다. 1960∼70년대 묵호항은 아주 잘나갔다. 명태, 오징어 등의 어획량이 풍부했고 석탄과 시멘트를 실어 나르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든 화주, 선원, 주민들이 한데 엉켜 요정과 상점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유행의 첨단도시’이자 ‘술과 바람의 도시’였다.

 

하지만 풍부하던 명태, 오징어, 도루묵의 어획량이 급감하고 산업구도까지 바뀌면서 사람들은 하나둘 도시로 떠났고 어느덧 묵호는 노인들만 남았다. 쇠퇴했던 묵호항이 이제 다시 살아나고 있다. 2011년부터 조성된 벽화마을 논골담길 덕분이다. 묵호의 옛이야기를 그림으로 풀어낸 벽화와 소품들이 네 갈래의 골목마다 가득해 여행자들을 불러 모은다.

 

#동네 개도 만원짜리 물고 다니던 묵호항

 

논골담길에 유명한 벽화가 하나 있다. 개가 입에 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있는 그림인데 화려했던 묵호항의 전성기를 대변한다. 1941년에 개항한 묵호항은 1964년 국제항으로 승격되면서 전성기를 맞는다. 2만명이 넘게 살았고 옷가게 등 상점이 100m나 늘어섰다. 만선으로 돌아온 바다사내들은 대폿집에서 피로를 풀었기에 술집, 다방, 여인숙도 넘쳐났다. 사내들은 여인의 분내에 취해 주머니가 사정없이 털릴 정도로 흥청망청 돈을 썼고 아침이면 취객들이 흘린 만원짜리 지폐가 골목을 굴러다녔다. 동네 개들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녔을 정도였다니 번성했던 시절의 묵호항이 그려진다.

 

항구 북쪽 산 중턱에는 어부의 가족들이 많이 살았다. 지금도 지명이 남아있는 덕장길에는 산비탈 좁은 공간에 소나무로 만든 덕장이 즐비했는데 주로 오징어, 대구, 가오리를 대규모로 말렸다고 한다. 오징어 배를 따서 말리는 것은 아낙네들의 몫. 오징어를 말리다 비라도 맞으면 손해가 컸지만 늘 일손이 부족했기에 그냥 버렸다. 다시 말리는 것보다 새로 사서 말리는 것이 이득일 정도로 어획량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꽃처럼 마을도 피고 진다. 1983년 인근 동해항이 국제무역항으로 성장하면서 묵호는 화려했던 시절을 뒤로하고 본격적인 쇠퇴기를 맞는다.

 

논골담길 전경

 

#벽화마을로 다시 살아난 논골담길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면서 논골마을의 집들은 벽에 금이 가고 무너져 내리면서 달동네로 변하고 말았다. 수십년 동안 폐허 같던 마을에 활기가 돌기 시작한 것은 2010년. 동해문화원이 주관한 어르신생활문화전승가업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마을 어른들과 예술가들의 손길이 더해지면서 골목길은 ‘지붕 없는 갤러리’로 태어나기 시작했다. 오래된 마을에 다양한 테마와 묵호만의 이야기를 담은 벽화마을이 조성돼 빛바랜 추억과 예술이 만나게 된 것이다. 6년 동안 이렇게 마을을 꾸민 결과 이제는 동네 사람들에게는 향수를 자극하는 어머니의 품이자, 젊은이들에게는 감성을 자극하는 인생사진 명소로 마을이 살아났다.

 

묵호등대

올해 한국관광공사의 강소형 잠재관광지로 선정된 논골담길 여행은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는 묵호등대에서 시작한다. 1962년 지어졌는데 남자는 지게로, 여자는 대야로 자갈, 모래, 시멘트를 담아 나르는 고생 끝에 준공됐으니 마을사람들의 애환이 깃든 곳이다. 일거리가 없는 6월 꽁치철과 8월 오징어철 사이 일하며 일당으로 보리쌀이나 밀가루 한 되 정도의 품삯을 받았단다. 2006년에 같은 자리에서 개축됐는데 푸른 하늘과 바다와 아주 근사하게 잘 어울린다. 바다를 품은 산비탈에는 그리스 산토리니의 파란 지붕과 흰 벽돌을 살짝 닮은 집들이 이국적인 풍경을 만든다.

 

도째비골 스카이밸리

인근에는 바다 위로 쭉 뻗어나간 스카이워크 공사가 한창이다. ‘도째비골 스카이밸리’인데 산비탈을 활용해 먹을거리와 휴식공간이 있는 맞춤형 테마 특화관광지로 개발되고 있다.

 

논골담길이 잠재형 강소관광지로 선정된 이유가 또 있다. 현재 강릉까지 연결된 KTX의 동해선이 12월 개통되기 때문이다. 서울역이나 청량리역에서 출발해 묵호역을 거쳐 동해역까지 한번에 갈 수 있으니 조만간 이곳을 찾는 여행자들이 부쩍 늘어날 것이다. 묵호역에서 논골담길까지는 걸어서 15분이면 충분하다.

 

#감성과 맛을 자극하는 골목길

 

묵호등대를 뒤로하고 바람의 언덕으로 향한다. 논골상회에 도착하면 말뚝박기 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조형물이 어린시절 향수를 자극한다. 마부로 선 아이는 배꼽을 드러내고 말이 된 아이의 바지는 반쯤 흘러내려 엉덩이가 다 보인다. ‘맞아 옛날에 저렇게 놀았지’. 논골카페 앞 언덕에는 두 아이와 함께 근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여인의 조각상이 서 있다.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떠난 남편을 기다리나 보다.

 

말뚝박기 놀이하는 아이들
논골담길 바람의 언덕 논골 만복이네 식구들
논골담길 바람의 언덕

‘논골 만복이네 식구들’이란 제목이 붙어있는데 묵호의 아낙네들은 만선과 남편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며 저렇게 바다를 바라봤을 것 같다. 이곳에서 햇살에 반짝거리는 묵호항의 아름다운 풍경과 알록달록한 색으로 칠해진 논골담길 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포토존에 서서 눈을 감아 본다. 바람의 언덕답게 시원한 바람이 귓불을 간지럽히는데 풍경이 설치돼 영롱한 바람의 연주가 펼쳐진다.

 

바람의 언덕에서 본 묵호항 전경

 

등대오름길을 따라 수변공원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똥 누는 아이 조각상, 소녀벽화와 풍차, 드라마 상속자들 촬영지로 여주인공 차은상이 살던 주황색 지붕 집, 명태포와 김치전을 팔던 논골주막 벽화들이 이어진다. 묵호 중앙시장에서는 칼국수 맛집들이 인기다. 매주 금∼토요일 야시장이 열리는데 깡통가게에서 길거리 음식을 맛보고 전통상설 문화 공연과 쇼핑을 즐길 수 있다. 어달횟집 명소거리에는 해안을 따라 모던한 카페와 횟집들이 이어진다. 

 

동해=글·사진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