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개봉 20주년이 된 강제규(57) 감독의 ‘쉬리’(1999)는 여러모로 한국영화사의 분기점 중 하나다. 특히 이 영화가 산업에 끼친 영향은 막대하다.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한국영화 시스템은 ‘쉬리’부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며, 이 영화가 보여 준 폭발적 흥행은 이후 따라야 할 전범이 됐다. ‘쉬리’는 ‘블록버스터’의 시대를 시작한 영화였고, 21세기 ‘한국영화 르네상스’는 ‘쉬리’가 다진 토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영화 산업의 분기점
◆“파이를 늘려야 한다”
‘쉬리’ 이후 한국영화는 급변하기 시작했다. 30년 가까이 지속된 장기 침체를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던 상황에서, “파이를 늘려야 한다”는 강제규 감독의 말은 패러다임이 됐다. ‘쉬리’로 영화의 산업적 잠재력이 증명되면서 좀 더 큰 자본의 유입이 가능해졌고, 이는 ‘웰메이드 장르 영화’의 토대가 됐으며, 이후 1000만 영화가 등장하게 된다. 강우석(59) 감독의 ‘실미도’(2003)가 ‘쉬리’ 개봉 5년 만인 2004년 1000만 고지에 올랐으니, 그 짧은 기간 동안 파이의 크기는 거의 빅뱅 수준으로 급성장한 셈이다.
흥미로운 건 이 영화의 전략이었다. ‘쉬리’는 긴 세월 동안 남한 관객들에게 익숙한 분단 구도를 연인 관계로 치환한다. 그러면서 멜로드라마의 가공할 힘이 생겨났고, 여기에 액션과 스릴러가 결합됐다. 특히 이 영화는 한국영화 최초로 ‘제대로 된’ 총기 액션을 보여주며 스펙터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블록버스터와 장르성과 스펙터클. 이 세 가지는 삼위일체를 이루며 한동안, 아니 지금까지도 한국영화를 지배하는 대원칙이 됐다.
◆‘분단 장르 영화’의 시작
이데올로기 측면에서도 ‘쉬리’는 언급할 만하다. 아직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전이라 경직된 부분이 있지만, ‘쉬리’는 분단이라는 상황 안에서 최대한 장르적 상상력을 발휘하고 카타르시스의 순간을 만들어 낸다. 이 방식은 이후 ‘공동경비구역 JSA’(2000)를 경유해 ‘의형제’(2010), ‘베를린’(2012), ‘공조’(2016), ‘강철비’(2017), 그리고 최근 ‘공작’(2018)까지 이어지는 ‘분단 장르 영화’ 범주 안에서 작동해 온 원칙이다. 이 영화들은 분단 상황을 연인이나 친구나 형제나 파트너 같은 관계로 설정하는데, 이것은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모순인 분단을 소재로 극적 긴장감을 극대화하며 동시에 장르적 상상력을 결합시키는 전략이기도 하다. ‘쉬리’는 이러한 서사의 시작이었고 가장 뜨거운 지점이었다.
‘쉬리’는 한국영화가 변하고 있으며, 세기말에서 충무로의 새로운 세기가 열리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 영화란 엔터테인먼트의 위상을 한 단계 격상했고, 기획부터 시작해 제작, 배급 등 전 분야에 걸쳐 혁신이 일어났다. 마케팅 비용이 급증한 계기도 ‘쉬리’였으며, 영화 산업에 대한 자본의 마인드도 크게 변했다. 무엇보다도 흥행 전략이라는 것이 생겨났다.
강제규 감독은 말한다. “새로운 소재, 새로운 스타일의 영화라서 한국영화의 자본 규모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벽을 부수지 않는다면 어떤 새로운 시도도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쉬리’는 우리가 할리우드 영화에서 봐 왔던 것들을 한국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소재, 한국만의 그릇에 담아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쉬리’는 1990년대 시도됐던 기획 영화의 완성이었으며, 이젠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전설이 됐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