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초입, 밤이 깊다. 오랜만에 먼 남도에서 보내온 이은정 소설가가 쓴 산문집 ‘눈물이 마르는 시간’(마음서재)을 읽는다. 어릴적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남도의 외딴 섬으로 자신을 유폐시킨 지 5년, 그녀는 이곳에서 어린 시절 그토록 꿈꾸어 왔던 소설가의 꿈을 이루었다. 이 책은 작가의 삶이자 결정체다. 그런데 놀랍게도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산문집은 바닷가 사람냄새로 가득하다. 삶의 비린내를 묻히고 다녔던 어부 아버지의 고독과 마을노인들의 굴곡진 인생사는 물론 그간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고 이해하려고 애쓴다. 자연과 짐승에게도 사람 못지않은 따뜻한 시선이 있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작가는 40년 동안 외면해 왔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품어준다. 산문집의 제목은 작가가 힘든 자신을 이기고 사랑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축약하고 있다.
작가는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전에 독자에게 ‘같이 울어줄 수 있으니 눈물에 인색하지 말라’고 한다. ‘마음이 아프면 실컷 울고, 부디 마르기를, 눈물이 마르는 시간 속에 머물기’를 바라고 있다.
산골 마을에서 반려견과 단둘이 사는 젊은 여자의 삶. 그녀가 가진 것이라곤 끈질긴 가난과 아픈 개와 허망한 꿈이 전부이지만 작가는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현재에 만족하며 살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자존감 때문일 것이다. 울 만큼 울고 드디어 눈물이 마르는 시간 속에 머물게 된 그녀는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감사하다.
정성욱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