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 시장 몰리는 수험생… ‘나쁜 노동계약’으로 사회 첫 발

10대 노동인권 ‘사각지대’ 지적 / 수능 직후 이력서 등록 5배 늘어 / 미숙련 단기고용 꺼리는 고용주 / “지원자 많다” 부당 조건 내걸어 / ‘알바 경험’ 고3 60% ‘無계약서’ / 34%는 “최저임금도 못 받고 일해” / 사장 폭언·허위구직광고 피해도 / “학생·고용주 노동인권교육 필요”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 직후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A(19)씨는 수험생이란 이유로 불합리한 노동조건조차 감내해야만 했다. A씨는 분명 ‘최저시급 지급’이라는 공고를 보고 집 근처 편의점에 지원했지만, 면접을 보러 가니 점주는 당연하다는 듯 “최저시급을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점주는 “학생 같은 지원자는 많다”며 ‘싫으면 하지 말라’는 식의 태도를 내비치기도 했다. 당시 치열한 아르바이트 구직 경쟁에 일자리를 찾기 힘들었던 A씨는 결국 근로계약서 미작성은 물론, 최저시급보다 1000원가량 낮은 임금이라는 불합리한 계약조건을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2020학년도 수능을 마친 수험생들은 A씨가 지난해 겪은 부당한 일을 겪지 않고 넘어갈 수 있을까. 최근 수능을 마친 수험생들이 대거 아르바이트 시장에 몰리면서 구직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아르바이트 자리를 대가로 한 ‘불합리한 노동계약’에 대한 주의가 요구된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수험생들을 보호하기 위한 ‘노동인권교육’의 강화와 함께 고용주를 대상으로 한 교육도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에 따르면 올해 수능 응시자 153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아르바이트’가 수능 후 가장 하고 싶은 일로 뽑혔다. 가장 해보고 싶은 아르바이트로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이색 아르바이트’가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수험생들의 이런 희망은 청년 노동시장의 현실을 감안하면 헛된 바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수험생들이 대거 아르바이트 시장에 뛰어들면서 인력 공급은 늘어나는 반면, 고용주 사이에 ‘수험생 채용 기피’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일부 고용주들은 이를 악용해 채용을 조건으로 부당한 노동조건을 요구하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알바몬이 2017년 수능 직후 일주일간 10대 구직자의 신규 아르바이트 이력서 등록 추이를 분석한 결과, 하루 평균 2176건의 이력서가 새로 등록돼 수능 전(444건)보다 5배가량 많은 학생이 아르바이트 시장에 뛰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고용주 사이에선 미숙련자인 데다가 대학 입학 등을 이유로 단기간만 일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잦다는 이유로 수험생 고용에 회의적인 기류가 형성돼 있다. 실제 수능 직후부턴 자영업자들이 활동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이러한 이유로 수험생을 채용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글과 댓글들이 속속 게시되고 있다.

 

문제는 수능 후 아르바이트 인력시장에서의 수요·공급 격차를 비집고 ‘나쁜’ 노동계약이 고개를 든다는 것이다. 김모(20)씨는 2년 전 수능이 끝난 뒤 고깃집에서 주 5일, 하루 10시간 넘게 일했지만 근로계약서 미작성은 물론, 주휴수당도 받지 못했다. 김씨는 “수능 직후 수험생이 구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자리란 이런 곳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아르바이트를 경험한 고3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도 이런 현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응답자의 10명 중 6명(60.3%)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34%는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했다. 신정웅 알바노조 위원장은 “수능 직후인 11월 말부터 1월까지 고3 학생들의 상담 전화가 집중적으로 들어온다”며 “고용 조건과는 다른 급여 및 근무시간, 허위 구직광고, 사장의 폭언·욕설 등 피해 사례도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매년 반복되는 수험생 노동인권침해를 막기 위해선 평소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노동인권 교육 강화 및 고용주 대상 교육 의무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 위원장은 “학교에서부터 본인의 권리를 숙지시킨 채 사회로 내보내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근로계약서 작성법 등 간단한 교육만으로도 학생들의 불이익을 상당히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흥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학생 대상 교육은 물론 경총 등 사업자단체에서 고용주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도 진행돼야만 실효성 있는 수험생 노동인권 보호 대책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강진 기자 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