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연(사진) 유니버설발레단 부예술감독 겸 지도위원은 발레를 좋아하는 이에겐 한 해를 보내는 연례행사인 ‘호두까기 인형’ 공연을 준비 중이다. 전체적인 안무를 점검하고 무용수들이 더욱 정교하게 안무를 표현할 수 있도록 도우면서 공연 전반을 챙기는 게 그의 역할이다.
여섯살부터 발레를 시작한 유 부감독은 후배 무용수들에게는 늘 배역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을 주문한다. “가령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을 맡으면 책도 찾아서 읽어보고 영화도 보면서 나만의 줄리엣을 확실히 이해하고 만드는 노력이 중요해요. 안 그러면 춤의 깊이가 얇아지는 거죠. 그래서 ‘네가 누구를 표현하려는지, 네가 무슨 역할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자꾸 강조합니다.”
바가노바 최대 이벤트는 졸업시험이다. 한 학년에 20명이 채 안 되는 남녀 각 2개반이 졸업작품으로 무대에 서는데 마린스키는 물론 볼쇼이발레단 등 러시아 주요 발레단장이 총출동한다. 차세대 스타를 영입하기 위해서다. 물론 최고는 마린스키 몫이다. 유 부감독은 “바가노바 졸업식이 6월인데 그 전 연말·연초에 마린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공연에서 바가노바 졸업생 한두 명이 배역을 맡습니다. 저도 신년공연에서 ‘마샤(마리)’역을 맡게 됐는데 그때 비로소 ‘아, 내가 마린스키에 들어가겠구나’하고 짐작할 수 있었죠.”
마린스키에서 유 부감독은 우즈베키스탄계 혼혈 남자 무용수를 빼면 유일한 외국인 단원이었다. 경쟁은 치열했지만 최고의 무대에 설 수 있는 나날들이었다. 유 부감독은 “안 가본 나라가 없을 정도로 많은 국가 여러 극장 무대에 올랐다. 세계 최고 무용수들과 한 연습실에서 땀 흘리고 내로라 할 극장에서 이런저런 역할을 맡아 계속 춤추면서 갈채를 받는 생활이 너무너무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그런데도 유 부감독은 2010년 34세 때 귀국을 결심하고 마린스키 내한 공연에서 마지막으로 무대에 선다. 바가노바 동기인 디아나 비쉬네바가 아직도 마린스키 수석무용수로 활약 중인 것에 비하면 빠른 은퇴였다. 아예 서울보다 익숙해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살면서 끝까지 마린스키에서 춤추다 바가노바에서 교사로 일할 수도 있으나 퍼뜩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들고 김치와 찌개가 그리워지면서 내린 결정이었다.
기초를 강조하는 마린스키는 특히 군무가 탄탄하고 그만큼 승급도 까다로운 발레단. 바가노바에서 마린스키로 이어진 경력은 수석무용수와 군무 사이인 솔리스트에서 끝났다. 이 때문에 마린스키 시절 유 부감독에게는 “차라리 국내나 다른 해외 발레단으로 옮겨 수석무용수로 활동하는 게 낫지 않겠나”라는 얘기가 끊이지 않았다. 실제 볼쇼이발레단조차 수석무용수 중에는 율리아 스테파노바, 올가 스미르노바 등 마린스키에서 군무나 코리페(군무 리더)에 머물렀던 무용수들이 많다. 그러나 유 부감독은 “단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 워낙 마린스키와 다른 단체 규모가 너무 달랐다. 제 자존심이 허락을 못했다. 세계 최고 발레단에서 내가 어디까지 가는지, 주역에 못 가더라도 여기서 끝까지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귀국 후 유 부감독은 예원학교, 선화예고 강사와 국립발레단 지도위원 등을 거쳐 유니버설발레단에 안착했다. “제 삶이 좀 더 화려했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게 오히려 너무 감사합니다. 뭔가 반짝하고 화려하게 터지고 난 뒤였다면 지금의 나와 내 가족이 없을 수 있겠죠. 건강하게 아이를 낳는다는 것도 마음먹는다고 되는 일은 아니겠기에…. 평범하게 가정을 꾸리고 사랑하는 아이, 가족과 함께하는 게 너무 감사합니다.”
글 박성준, 사진 이제원 기자 alex@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