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27일 국회 본회의에 자동 부의됨에 따라 상정 및 처리 절차를 눈앞에 두게 됐다. 선거법 개정안 본회의 처리는 패스트트랙에 함께 오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 등 검찰개혁 법안이 12월3일 부의된 이후 시도될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선거법과 검찰개혁 법안을 정기국회 종료(12월10일) 전에 처리한다는 것을 1차 목표로 하고 있다. 내년 총선 예비후보자 등록 시작일(12월 17일) 전에 끝낸다는 취지에서다. 반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막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민주당은 ‘게임의 룰’인 선거법을 일방 처리하는 데 대한 부담이 있다. 한국당은 지난 4월 ‘동물국회’처럼 물리력을 이용해 막을 수 없다는 데 고민이 있다. 무조건 반대보단 협상 필요성이 내부에서 거론되는 이유다.
민주당은 일단 검찰개혁 법안의 본회의 부의 전까지 한국당을 포함한 여야 합의에 집중할 방침이지만 한국당과의 협상이 결렬될 경우 국회법에 따라 표결처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이를 위해 ‘4+1(민주당·바른미래당 당권파·정의당·평화당+대안신당)’ 채널을 가동해 의결정족수 확보 작업에도 들어갔다.
현재 ‘지역구 225석·비례대표 75석,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적용’을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이 본회의에 부의됐지만 원안 통과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각 당의 이해가 달라 본회의 처리가 불분명해서다. 지역구 250석·비례대표 50석, 지역구 240석·비례대표 60석 등 지역구 의석수를 일부 늘리고 연동형 적용 비율도 상향하는 등 다양한 방안이 ‘대안’으로 거론되는 이유다.
합의안이 도출되더라도 한국당 등의 반대로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한국당 등은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카드를 꺼내 들며 최대한 처리를 늦출 계획이다. 결국 민주당은 12월 임시국회를 소집해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를 추진해야 하지만 한국당 등의 반대로 소집이 여의치 않을 수 있다.
이럴 경우 국회법에 따라 선거법 개정안 등은 본회의 부의 이후 60일 지나 열리는 본회의에 자동 상정된다. 선거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더라도 ‘선거구 획정’을 위한 선거법 개정도 이뤄져야 한다.
총선을 불과 한두 달 남겨놓고 ‘게임의 룰’이 확정되는 셈이어서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사안인 검찰개혁 법안도 조율해야 한다. 패스트트랙에 민주당 백혜련 의원 안과 바른미래당 권은희 의원 안 등 두 개의 공수처 법안이 올라와 있다. 백 의원 안과 권 의원 안은 기소 방식과 공수처장 임명 방식 등에서 차이가 있다. 전문가들도 법안 처리 전망을 놓고 의견이 엇갈린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제1야당을 빼고 선거법을 통과시키는 건 정치적 리스크가 크다”며 “지역구 축소를 줄이는 방향이나 선거법을 포기하고 공수처를 선택하는 식으로 한국당을 끌어들이는 방안을 민주당이 고민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강윤 정치평론가는 “민주당은 선거법과 검찰 개혁법 어떤 것도 포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며 “한국당도 황교안 대표 단식에 대한 출구전략이 필요한데, 민주당이 지역구 감소 폭을 줄이면 조정 가능성이 있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민주당 “한국당이 연동형 비례제 수용하면 협상”
더불어민주당은 27일 본회의에 부의된 공직선거법 개정안 처리와 관련해 한국당을 향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수용하라고 압박하는 한편 연동형을 수용하면 유연하게 협상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원내대표는 이에 따라 이날도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바른미래당 오신환 원내대표와 회동하며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 문제를 논의했지만 역시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민주당과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은 이날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 공조를 위한 ‘4+1’ 협의체 첫 모임을 열고 선거법 처리 방안 모색에 나섰다.
민주당은 군소 야당 간 합의안이 만들어지면 이를 큰 틀에서 수용한다는 방침이지만, 지역구 축소 폭을 줄이는 대신 비례대표 연동률을 100%로 올리는 방안엔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한편 민주당 현역 의원 9명이 당내 다면평가 명단에서 빠져 내년 총선 불출마가 공식 확인됐다. 이해찬 대표뿐 아니라 지역구 의원으로는 서형수·표창원 의원,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 등이, 비례대표 중에선 김성수·이용득·이철희·제윤경·최운열 의원이 각각 명단에서 제외됐다.
◆연좌 단식·총사퇴… 강경 대응 쏟아낸 한국당 의총
자유한국당은 27일 의원총회를 열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오른 법안 저지를 위한 방안을 모색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타협보다는 연좌 단식과 의원직 총사퇴,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 등의 강경론이 주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 후 기자들과 만나 ‘패스트트랙 저지를 위한 대책을 결정했나’라는 질문에 “다양한 방안이 논의됐다. 이제 논의를 할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의원 10여명은 황 대표의 단식 후 처음으로 2시간 가까이 이어진 비공개 의총에서 여권의 패스트트랙 추진에 따른 대응 방안을 백가쟁명식으로 발표했다. 협상보다는 단식, 의원직 총사퇴 등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저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고 다수 의원들이 전했다.
한 중진의원은 “황 대표의 건강이 매우 우려된다. 황 대표를 강제로라도 병원으로 데려가는 대신 4선급 이상 중진들을 시작으로 동조 단식에 나서자”고 의총에서 제안했다. ‘100명 연좌 단식’을 하자는 의견도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선 바른미래당 비당권파인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이 제안한 필리버스터에 힘을 보태자는 의견도 나왔다. 12월 10일까지 열리는 정기국회 이후 패스트트랙 법안 통과를 위해 열릴 수 있는 임시국회를 필리버스터로 막자는 취지였다. 의원직 총사퇴는 국회의장 결제, 본회의 과반 찬성 등의 사퇴 절차도 고려해야 하기에 향후 정국 상황을 보고 결정하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였다.
황 대표는 이날 8일째 단식을 이어갔다. 김도읍 당 대표 비서실장은 “그동안은 인기척이 있으면 눈을 떴는데 지금은 기력이 떨어져서 그런지 자는 시간이 많다”며 “단식을 만류해도 황 대표가 ‘조금 더 이어가야 할 것 같다’며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황제 단식’이라고 비판한 정의당 심상정 대표도 이날 황 대표의 단식 농성장을 찾았다. 일부 황 대표 지지자들은 “심상정 물러가라”며 항의하거나 심 대표를 붙잡으며 온몸으로 막아서기도 했다. 원희룡 제주지사, 김태호 전 경남지사,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 등 범보수 인사들의 방문이 줄을 이었다.
이귀전·안병수·최형창·이창훈 기자 frei5922@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