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중림창고에 앉아있으면 통창 너머로 구부정한 오르막이 한눈에 들어온다. 방앗간, 미용실을 오가는 이웃을 보면 차 한잔 하라고 불러세울 법한 풍경이다. 중림창고는 28일 운영에 들어가는 ‘신생’ 건물. 맞은편 성요셉아파트와는 반세기 가까이 ‘연식’ 차이가 나지만, 옛것과 새것은 중림시장 골목에서 이색적인 조화를 이룬다.
좀체 발길 닿을 일 없던 서울역 뒤편이 중림창고 같은 ‘핫플’(새로 뜨는 명소)이 곳곳에 숨겨진 이색 지역으로 거듭났다. 서울시는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서울역 일대 서계·중림·회현동에 ‘앵커시설’ 8곳이 문을 연다고 27일 밝혔다.
앵커시설은 도시재생의 마중물 역할을 할 핵심 시설을 말한다. 주민이 어울리며 공동체의 구심점이 되고, 노후 주거지의 삶을 풍부하게 만들 시설들이다. 이번에 문을 연 8곳은 복합문화공간 ‘중림창고’, 문화예술공간 ‘은행나무집’, 마을 카페 ‘청파언덕집’과 ‘계단집’, 공유 부엌·서가 ‘감나무집’, 봉제패션산업 거점공간 ‘코워킹팩토리’, 도시형 마을회관 ‘회현사랑채’, 쿠킹스튜디오 ‘검벽돌집’이다.
시는 이 지역에서 2016∼18년 일반 주택과 건물을 매입해 공공건축가와 리모델링하거나 신축하는 방식으로 앵커시설들을 만들었다. 중림창고는 지하 1층, 지상 2층에 연면적 267.3㎡로 건설됐다. 과거 이 자리에는 판자 건물과 창고가 들어서 있었다. 이 동네에서만 40년 살았다는 성요셉아파트 주민 김명자(65)씨는 “예전엔 여기가 고양이 집이라 냄새가 너무 심했다”며 “동네가 깨끗해지니 정말 좋다”고 말했다.
중림창고에서는 매달 저자를 초청해 이야기를 나누고 책을 읽는 ‘심야책방’, 일상과 브랜드를 이야기하는 ‘심야살롱’이 열린다. 1980년대 말부터 중림동에서 의상실과 수선실을 운영한 주민이 맡는 ‘중림동 수선집’도 들어선다.
샛노란 외벽이 눈에 띄는 ‘은행나무집’에서는 라이브 공연과 전시가 열릴 예정이다. ‘계단집’은 목조 건물의 정취를 그대로 살린 마을카페다. 1년간 교육받은 주민 바리스타 4명 등이 운영에 참여할 계획이다.
이날 가본 중림시장 골목 인근 중림로는 도시재생의 여파로 눈에 띄게 변신 중이었다. 기존 상가 사이에 세련된 감성의 상점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었다. 강맹훈 서울시 도시재생실장은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홍대·신촌 일대 상인들도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서울역 일대 도시재생활성화 사업지는 서울역, 중림동, 회현동, 서계동, 남대문시장 일대 총 5개 권역의 195만㎡다. 시는 철도로 단절된 서울역 일대 동·서 지역의 균형 발전을 위해 2017년 12월 ‘서울역 일대 도시재생활성화계획’을 수립하고 ‘서울로 7017’을 중심으로 주변 지역재생을 진행 중이다.
송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