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특수활동비를 전달한 것을 대법원이 ‘국고손실죄’로 판단한 이유는 국가정보원장들을 ‘회계관계직원’으로 봤기 때문이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은 28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상고심에서 국정원장을 회계관계직원으로 판단하고 박 전 대통령이 받은 35억원 가운데 33억원은 특정범죄 가중처벌법(특가법)상 국고손실에 해당한다고 결론 내렸다. 특가법 5조에 규정된 국고 등 손실은 ‘회계관계직원 등의 책임에 관한 법률’에 따른 회계사무 직원이 국고 등이 손실될 것을 알면서도 횡령·배임을 저질렀을 때 처벌하는 죄명이다.
대법원은 국정원장의 경우 특활비 집행 과정에서 사용처와 지급 시기·금액을 직접 확정하는 등 ‘지출원인행위’를 수행하고, 특활비를 실제로 지출하도록 하는 등 자금지출행위에도 관여하기 때문에 회계관계직원이라고 판단했다. 앞서 1심은 국정원장이 회계관계직원이라고 판단했지만 2심에서는 그 판단을 뒤집었다. 이에 따라 1심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받은 것으로 조사된 국정원 특활비에 국고손실 혐의가 적용됐지만 2심에서는 업무상 횡령죄가 적용됐다.
대법원은 국정원 특활비가 뇌물이 아니라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한 하급심의 결론에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무죄 이유로는 “횡령 범행에 의해 취득한 돈을 내부적으로 분배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 전 대통령과 국정원장들 사이에 국정원 자금을 횡령해 박 전 대통령에게 넘기기로 하는 ‘공모’가 있었기 때문에 뇌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1심에서 징역 2년∼2년 6개월을 각각 선고받은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도 항소심 재판을 다시 받게 됐다. 세 전직 국정원장은 항소심에서 “국정원장은 회계관계직원이 아니다”는 판단에 따라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혐의에 대해 무죄 판단이 내려진 바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특별사업비의 집행에 관해 국정원장은 회계직원책임법상 회계관계직원에 해당한다는 점을 최초로 명확히 판시했고, 횡령금의 내부적 분배에 해당하는 경우 뇌물죄가 성립할 수 없다는 법리를 구체적인 사안에 적용한 판결”이라며 이번 판결의 의의를 설명했다.
이번 대법원 선고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2심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이 전 대통령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으로부터 국정원 특활비 2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2억원의 국고손실과 10만달러의 뇌물 혐의가 모두 인정돼 유죄판결을 받았다. 당시 1심 재판부는 원 전 원장을 회계관계직원으로 봤고, 이 전 대통령은 이에 불복해 현재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