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하명의혹 사건을 수사중인 검찰이 숨진 전 청와대 A수사관의 휴대전화 통화내용에서 중요한 단서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부장검사 김태은)는 2일 오후3시20분쯤부터 오후5시쯤까지 서울 서초경찰서 형사팀 압수수색을 통해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과 함께 근무했던 A수사관의 휴대전화와 자필로 작성된 유서 9장 등 유류품을 확보했다.
휴대전화 안에는 A수사관의 각종 통화내역과 오고간 메신저 내용 등 A수사관 사망 진실규명에 결정적 역할을 할 내용이 대거 담겨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선거의 공정성을 해친 사건이란 국민적 의혹이 불거진 만큼 사건의 진상과 수사관 사망 경위를 명확히 밝히겠다는 입장이다. 사정당국 관계자에 따르면 A수사관의 유서에는 ‘휴대전화를 초기화 시키지 말아달라’는 내용도 담긴 것으로 전해졌지만, 검찰과 경찰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경찰은 압수수색과 관련, ‘검찰의 불순한 의도가 숨어있는 유류품 압수’라며 검찰에 휴대전화 포렌식 작업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경찰 관계자는 “대단히 이례적인 압수수색”이라며 “검찰이 ‘하명수사’ 의혹 등과 관련해 오히려 숨겨야 하는 사실이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당연한 절차라고 맞섰다. 서울중앙지검 공보관은 “선거를 앞둔 수사의 공정성이 문제 된 사안인 만큼 주요 증거물인 휴대폰 등을 신속하게 보전해 고인이 사망에 이른 경위와 사건의 진상을 의문 없이 규명하고자 압수수색에 이른 것”이라며 “압수물을 투명하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분석하겠다”고 말했다.
검찰의 반응에 경찰은 휴대폰 포렌식 과정에 참여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경찰청은 입장문을 통해 “사건 이후 명확한 사망 원인을 확인하기 위해 현장 감식, 주변 폐쇄회로(CC)TV 확인, 부검 등 수사를 진행했고, 현장에서 발견된 메모, 휴대폰 분석 등 추가 수사를 진행하고 있었다”며 “경찰에서 경위를 명확히 밝히는 것은 당연한 절차로, 휴대폰 포렌식 과정 참여 등 필요한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제안했다.
검찰 측은 “경찰이 포렌식 참여를 원할 경우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며 “검찰에서 휴대폰의 정보를 옮기는 ‘이미징’작업을 지켜보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그 안의 내용을 보는 것에 대해서는 유가족 동의 등 절차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백 전 비서관의 ‘별동대’ 운영을 거듭 부인했다. 고민정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백 전 비서관과 함께 일한 수사관 2명과 관련해 “두 분이 직제상 없는 일이라든지 혹은 비서관의 별동대라든지 하는 등의 억측 보도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김기현 전 울산시장은 공권력이 개입해 불공정한 선거가 치러졌다며 선거무효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김 전 시장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해 울산시장선거에 청와대와 경찰의 개입 의혹과 관련, “공정한 선거관리를 해야 할 경찰과 청와대가 도리어 공권력을 동원해 조직적으로 불법선거를 주도하였으므로, 울산시장 선거는 중대한 하자로 인해 무효”라고 주장했다.
◆ 윤총장, 숨진 수사관 각별히 신임 “평소 책임감 강해… 부담 컸을 것”
지방선거 개입 의혹을 받는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현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지휘한 이른바 ‘별동대’로 활동하다 숨진 채 발견된 A수사관이 유서에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남긴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A수사관은 과거 윤 총장과 함께 일한 적이 있는 인물로 성실성으로 검찰 내에서 좋은 평가가 많다. 윤 총장은 이날 대검찰청 간부회의에서 A수사관의 갑작스러운 사망과 관련해 굉장히 안타까워하고 침통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총장은 이날 대검찰청 간부들과 함께 고인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A수사관은 윤 총장이 과거 대검 중앙수사부(현 반부패·강력부) 근무 시절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해병대 출신으로 만능 스포츠맨이고 성격도 아주 밝았다는 게 함께 근무한 이들의 전언이다. 주변 수사관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형성했고 업무 집중도가 높았다고 한다. 윤 총장도 이러한 A수사관의 업무 태도를 신임하고 높이 평가했다는 후문이다.
A수사관 지인들의 말을 종합하면 그는 백 전 비서관의 울산지방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이 보도되면서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를 보였다. 주변에서는 A수사관이 유서에 윤 총장에게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남긴 이유로, 본인이 백 전 비서관 밑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정확히 아는 핵심 당사자인 만큼 자기 죽음으로 검찰 수사가 진실 규명의 난관에 부닥칠 수도 있다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자신이 몸담았던 친정인 검찰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조사받기로 한 당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수사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떠나는 것과 윤 총장과의 인간적 신뢰관계에 대한 미안함이 겹치지 않았겠냐는 관측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A수사관이 윤 총장과 함께 일하며 윤 총장으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다는 것을 자신도 알고 있었다”며 “책임감이 강했던 A수사관이 자신을 아껴준 윤 총장에게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부분에 대해 미안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A수사관이 숨진 채 발견되기 하루 전날 6급·7급 실무진에 불과한 청와대 민정수석실 파견 수사관들을 지켜줘야 한다고 했던 김태우 전 검찰 수사관은 이날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백 전 비서관을 향한 분노를 쏟아냈다. 김 전 수사관은 “열심히 일한 (하급)직원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느냐”며 “처벌받아야 할 것은 부당한 일을 지시하고 시킨 권력자들”이라고 비판했다. 김 전 수사관은 “백원우 너희들 벌 받는다”며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끝까지 버틸 거냐”면서 “(A수사관이) 잠도 몇 시간 못 자고 어떻게든 정보 한 건이라도 구해서 보고하려고 노력했던 사람”이라고 분노했다. 그는 “너희들이 사람이라면 이 직원을 죽을 때까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며 “잘못한 거 있으면 다 불어”라고 호통쳤다.
정필재·이강진·박현준 기자 rus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