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가야사 복원과 정치 코드

한국 고대사 연구에서 소외됐던 가야사(史)의 복원은 김대중(DJ)정부가 들어서며 정권 차원의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 김해김씨인 DJ는 대통령 취임 직후 김수로왕릉을 참배했다. DJ는 1000명 넘게 모인 종친들 앞에서 “제가 대통령이 된 건 가락국 멸망 1500년 만의 경사가 아닌가 한다”며 “가야사 복원은 우리 모두와 정부의 책임”이라고 했다. 이때 시작된 가야사 복원사업은 노무현정부까지 이어지다 중단됐다.

가야사 연구는 문재인정부 출범으로 10여년 만에 다시 빛을 보기 시작했다. 문 대통령은 새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6월1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국정과제를 정리하고 있는데, 지방 공약에 포함됐던 가야사 연구와 복원을 꼭 포함시켜 주면 좋겠다”고 했다. 이후 ‘모든 길은 가야사로 통한다’는 말이 나왔다. 조금이라도 연고가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가야사 복원 관련 예산을 신청했다. 발굴 성과도 잇따랐다. 경남 창녕군 교동·송현동, 거창 석강리, 김해 예안리, 경북 고령 지산동, 전남 순천 운평리 고분 등에서 가야 유물이 출토됐다는 지자체와 연구기관의 발표가 언론을 장식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일부터 그동안의 성과를 집대성한 특별전 ‘가야 본성-칼과 현’을 열고 있다. 학계에서는 정권의 ‘가야사 복원’에 코드를 맞추려고 검증되지 않은 유물도 ‘가야’로 소개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가야사 연구자들은 “창녕 고분의 경우 5세기 이후 유물은 신라의 것으로 봐야 한다”며 “창녕 유물 중 가야계라고 볼 수 있는 유물은 1%도 안 된다”고 질타한다. 지자체들이 앞뒤 가리지 않고 가야사 복원에 열을 올리는 판에 국립박물관까지 나서서 향토사 수준의 전시를 한다는 것이다.

허구의 인물이 사실(史實)로 둔갑하기도 한다. 특별전에서는 수로왕의 비인 허황옥이 아유타국에서 싣고 왔다는 파사석탑을 전시하고 있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신화 속 인물인 허황옥을 실존 인물로 간주한 것이다. 철저한 고증 없이 정치 코드에 맞춰 역사 연구가 진행된다는 말이다. 이러다 정권이 바뀌면 가야사 연구는 빈 껍데기만 남는 게 아닐지 우려된다.

박창억 논설위원